[송진혁 칼럼] 더 강해질 빅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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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한민국에서 신문처럼 기구한 업종도 드물 것이다. 자유당 때엔 일제(日帝)때의 법까지 끌어대며 무작스럽게 신문을 폐간한 일까지 있었고, 5.16 후 군정 때엔 수류탄을 든 군인들이 신문사에 난입한 일도 있었다. 그 후에도 신문을 조지고 재갈을 물리는 무수한 방법이 동원됐다.

잘 나가던 남의 방송을 느닷없이 빼앗질 않나, 강제로 신문기자들을 대량해고시키지 않나, 업계 '자율' 로 광고를 끊어버리는 광고탄압을 하지 않나, 신문사에 기관원과 '홍보조정관' 을 상주시키며 감시와 압박을 하지 않나… 별별 일이 다 있었다. 신문기자들은 걸핏하면 끌려가고, 터지고 라면을 먹었다.

***미운놈 먼지터는 식 안돼

이런 암울하던 과정을 겪고 견뎌온 것이 오늘의 우리 신문들이다. 세무조사.세무사찰은 아마 권력의 최종적인 카드인지 모른다. 군사독재 기간에도 차마 이 카드는 사용되지 않았는데 YS 때 활용되더니 DJ정권에서 마침내 진가(眞價)를 발휘하게 됐다.

집권측은 이번 세무조사를 '통상적' 인 것이라고 했지만 아마도 이처럼 많은 신기록을 세운 '통상적' 세무조사도 없었을 것이다.

한 업종을 모조리 뒤진 것이 사상 최초로 신기록이요, 최장기간에 최다인력을 투입해 최고액의 추징금을 부과했으니 여러개의 신기록이 한꺼번에 나온 셈이다. 최대한 흠집내기, 최대한 부풀리기로도 신기록일 것 같고, 소위 빅3신문이 표적이요, 방송은 제외될 것이라는 예상이 보기 좋게 적중한 것도 신통한 일이다.

'통상적' 조사가 왜 이런 신기록을 대량생산했을까. 집권측은 언필칭 '조세정의' 를 말하고 언론개혁을 말한다. 조세정의와 언론개혁을 누가 반대하겠는가. 각 신문이 즉시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고칠 것은 고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 그렇다면 이제부터 조세정의를 세우고 언론개혁도 해나가자. 좋다. 이의가 없다.

그러나 조세정의와 언론개혁이 옳고 가치있기 때문에 DJ정권의 그 추진방식까지 자동적으로 옳고 가치있다고 할 수는 없다. 두 가지는 별개의 문제다.

다 말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는 오랜 기간 부패가 끊이지 않고 많은 분야에서 부패와 관행간의 한계가 모호한 사회다. 그래서 털어서 먼지 안날 놈이 없다고 하고, 세법대로 하다가는 장사를 못한다는 말이 널리 통하는 사회다.

심지어 YS와 DJ도 돈정치를 했고 검찰이나 국세청에 가서 죄인 안될 사람이 있느냐는 말이 바로 집권당의 최고위원한테서 나온다. 신문 역시 속세의 기업인 이상 털어서 왜 먼지가 안나오겠는가.

그렇다면 이런 부패문제를 놓고 정권이 미운 놈만 골라 사정의 현미경을 들이대고 먼지 터는 방식으로 부패척결-정의확립을 외친다면 그것은 옳고 정의로운 것일까.

신문이 밉다고 신문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야당이 밉다고 야당의원과 그 주변인물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방식이라면 그것으로 얻어내는 정의보다는 그런 권력의 사용(私用)과 편파로 빚어지는 불의와 해악이 더 크다고 할 수도 있다.

지금 신문 세무조사를 놓고 나라가 왜 이리 시끄러울까. 조세정의 확립이라는 '정의로운' 일을 했는데도 파열음이 이렇게 크게 나오는 까닭이 뭣이겠는가. 결국 많은 사람들이 조세정의라는 명분 뒤에 숨은, 조세비리보다 더 나쁜 저의.불순한 의도 이런 것을 우려하고 분노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늘 실패한 신문장악 시도

돌이켜 보면 지나간 50년 동안 신문을 장악하려는 어떤 시도도 성공하지 못했다. 권력과 신문간의 긴장이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결국 국민이 선택한 것은 신문이요, 언론자유의 발전이었다. 지금 빅3신문은 온갖 욕을 다 먹고 있다.

그렇지만 국민이 가장 많이 보는 신문이 바로 그 신문들이다. 수구.부패라고 욕먹는 신문을 가장 많이 보는 것은 곧 그 국민이 수구.부패이기 때문인가. 신문을 욕하는 사람들은 그 신문을 읽는 국민까지 욕하는 것인가.

전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신문은 시련을 이겨나갈 것이다. DJ정권 국세청의 엄청난 수고 덕분에(□) 앞으로 신문은 빠른 속도로 깨끗해지고 권력이 잡고 싶어해도 잡을 약점이 없어질 것이다. 그에 따라 그 전보다 신문은 불가피하게 더 강해질 것이다.

또 미운 놈에게 현미경을 들이대는 방식도 차차 사라지지 않겠는가. 이미 경험을 쌓은 국민이 권력의 상투 끝에 올라앉아 훤히 꿰뚫고 볼테니까.

송진혁 논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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