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비만 1인당 300만원 … “당신은 VVIP”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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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현대카드가 7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개최한 고객 행사에서 영국 크리스티의 경매사가 모의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현대카드 제공]

“앙리 마티스의 작품입니다. 3000만 달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3000만 달러 있습니까.”

옥셔니어(경매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숫자 푯말이 속속 올라온다. 부르는 가격이 높아질수록 푯말이 올라오는 속도도 경쟁적으로 빨라졌다. “이쪽 신사분이 5000만 달러를 들었습니다. 5000만 달러에 낙찰입니다.” 땅땅땅 하는 망치 소리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온다.

유명 경매업체 크리스티가 7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진행한 이 행사는 진짜가 아닌 모의 경매였다. 참석자 150여 명은 모두 현대카드의 블랙카드 회원들.

현대카드는 2007년부터 1년에 2~3회씩 블랙카드 회원만을 위한 ‘타임 포 더 블랙’ 행사를 열어왔다. 카드 연 회비만 200만원을 내는 VVIP 회원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참석자 1인당 행사비만 최소 300만원이다. 이날 행사장에도 크리스티가 미국에서 공수한 유명 미술 작품 30여 점이 걸렸다. 앤디 워홀의 ‘실버 리즈’, 피카소의 ‘재클린’과 같은 150억원 정도로 추정되는 작품도 있다. 참석한 한 블랙카드 회원은 “모의로 하는 경매인 데도 진품을 걸어놨느냐”며 놀라워했다.

블랙카드의 VVIP 마케팅이 주목받는 이유는 거액의 행사비 때문이 아니라 다채로운 이벤트를 통해 참석자들이 스스로를 ‘선택된 사람’으로 느끼게 하는 데 있다.

이 회사의 박세훈 마케팅본부장은 “VVIP 마케팅의 원칙은 ‘절대적인 차별화’”라며 “특히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을 주는 데 집중한다”고 말했다.

2005년 블랙카드가 처음 개척한 VVIP카드 시장엔 최근 다른 카드사들도 뛰어들었다. 하지만 블랙카드를 이탈한 회원은 한 명도 없었다. 블랙카드 회원인 기업의 대표이사는 “지난해 와인 행사 땐 특급 와인인 ‘로마네 콩티’를 내놓아 깜짝 놀랐었다”며 “1년에 한두 번만 행사에 와도 연회비는 뽑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런 행사로 현대카드가 손해 볼 것 같지만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다. 블랙카드 회원의 월 평균 사용액은 1000만원에 가깝다. 연체율은 제로다. 박세훈 본부장은 “블랙카드가 현대카드 전체의 이미지를 높여준다”고 설명했다. 블랙카드의 고급스러운 이미지 안에 다른 카드까지 혜택을 누리는 ‘우산 효과’다.

블랙카드 회원 수는 2000명 정도에서 더 늘지 않고 있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카드로 만들기 위해 고객 심사를 까다롭게 하기 때문이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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