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판교 개발, 정치권은 빠져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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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판교 개발 계획이 시작부터 심하게 삐걱거리고 있다. 건설교통부가 판교 일대 2백80만평의 땅을 개발, 주택 2만호를 건설하고 1천개 벤처기업이 들어갈 벤처단지 10만평을 조성하겠다는 안을 내놓자 경기도가 벤처단지를 60만평으로 늘릴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반면 서울시는 수도권 교통대책이 없다며 판교개발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다 민주당 내에서도 의원들이 심각한 의견차를 보여 계획을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5일에도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는 의견조율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 자리에서는 참석자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가 하면, 경기도 주장을 편드는 이윤수(李允洙.성남 수정)의원이 건교부 안을 옹호하는 이해찬(李海瓚)정책위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등 내분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판교는 개발 자체만으로도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막상 개발이 되면 수도권 인구 집중과 교통에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지 예측이 어렵다.

과거 예로 볼 때 정부 계획이 제대로 된 적이 드물었을뿐 아니라 예외없이 예상치 못한 부작용까지 터졌다. 자족(自足)도시로 만들겠다던 신도시들의 현주소가 어떤가.

특히 판교 개발은 경기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토의 대동맥인 경부고속도로 기능과 서울.수도권 교통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개발계획은 경제성과 주민 권익, 수도권 인구 집중과 교통, 나아가서는 광역도시계획과 지역 균형발전, 국토이용 차원에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돼야지 내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에 맞춰 적당히 키우고 줄일 문제는 결코 아니다.

만약 수정하겠다면 개발의 목적이 주거안정인지, 아니면 벤처단지 조성인지 개념을 분명히 한 후 처음부터 새로 짜야지 일부 의원 주장처럼 '절충' 해 적당히 얼버무려서는 안된다.

이대로 가면 판교는 또 하나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남고, 마구잡이 개발을 막기는커녕 서울.수도권은 엄청난 교통체증의 몸살을 앓게 될 게 뻔하다. 판교 정책에 정치권은 빠져라. 아니면 차라리 개발을 그만두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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