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유력 일간지 공동배급 탈퇴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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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프랑스 전역의 모든 신문배달이 공동 배급망 체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중단되는 '신문전쟁' 이 지난달 벌어졌다.

이번 사태는 프랑스에서 가장 발행부수가 많은 스포츠지 '레퀴프' (1백만부)와 '르파리지앵' (50만부)을 발행하는 아모리 그룹이 지난해 '신문 공동배급망(NMPP)' 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한 데서 비롯됐다.

1947년 설립된 NMPP는 신문.잡지.출판사 등 5개 정기간행물 연합체가 51%의 지분을 갖고 있는 프랑스 최대의 공동배급망이다.

프랑스의 대부분 일간지들은 신문 판매를 주로 가두판매에 의존해 왔고 따라서 가정배달은 NMPP와 전국 3만2천여곳의 판매소를 통해 이뤄졌다.

그러나 아모리 그룹이 폭탄선언을 했다. 공동 배급제가 르파리지앙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판단해 지난 6월부터 르파리지앵을 독자적으로 배달하겠다고 NMPP에 통보한 것이다. 아모리 그룹은 르파리지앵 배급판매회사(SDVP)를 설립하고 수도권의 판매소 5천5백여곳 가운데 약 80%와 배급 계약을 했다.

위기감을 느낀 NMPP는 아모리 그룹을 법원에 제소했다. 프랑스 항소법원은 지난주 "르파리지앵의 전국판인 오주르뒤의 발행을 포기해야 독자배급을 할 수 있다" 고 판시했다. 이에 아모리 그룹은 발행부수 13만부의 오주르뒤를 과감히 폐간할 뜻을 내비쳤다.

결국 NMPP 산하 노조들은 최대 고객 중 하나인 르파리지앵이 빠질 경우 빚어질 대량 감원사태를 우려해 지난달 중순 24시간 총파업에 들어갔다. 이 때문에 같은 달 13일 프랑스 전역의 모든 신문 가판대가 텅텅 비어 프랑스 국민들은 '신문 없는 하루' 를 보냈다.

NMPP는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서둘러 최고위원회를 소집했으나 팽팽한 견해차를 좁히는 데 실패했다. 아모리 그룹은 "독자배급을 하면 같은 비용으로 보다 많은 독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우리의 결론" 이라며 "그럼에도 변화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자유시장경제의 기업이 할 일인가" 라고 반문했다.

여론을 의식한 노조측은 아모리 그룹과 재협상에 들어갔다. 양측은 르파리지앵의 독자적인 배급을 인정하되 SDVP의 지분 중 51%를 NMPP가 소유한다는 내용의 타협안을 이끌어냈다. 이에 따라 노조측의 배달 거부로 닷새 동안 가판대에서 사라졌던 레퀴프와 르파리지앵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르몽드.르피가로 등 유력 일간지들이 정기구독이나 자판기 설치 등을 통해 꾸준히 새로운 배급체제를 모색하고 있어 이런 휴전체제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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