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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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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조선시대의 성균관(成均館)은 시험과 평가를 중요시했다. 성균관 유생들은 매월 초·중·하순으로 나눠 수시로 시험을 치렀다. 학칙에 해당하는 성균관 ‘학령(學令)’에 평가 방법을 규정해 놓을 정도였다. ‘시험을 평가하는 데 있어 해석이 막힘이 없으며 한 가지 경서의 의미를 다른 경서와 관련해서 깊이 이해한 경우가 ‘대통(大通)’이고, 한 가지 경서를 깊이 이해한 경우가 ‘통(通)’이며, 한 가지 경서의 한 장(章)의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는 경우가 ‘약통(略通)’이며, 한 장의 요지를 이해하고 있으나 설명이 미진한 경우가 ‘조통(粗通)’이며, 그 아래의 경우 벌을 준다’(서울대 교육연구소, 『한국교육사』). 말하자면 5등급 절대평가다. 기준에 도달했는지 여부를 살펴 부족한 부분을 메우도록 이끌 뿐 상대적 서열은 관심 사안이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 공군은 스테나인(stanine)이라고 하는 9등급 척도를 개발한다. 사병들을 유사집단으로 분류해 임무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표준화 점수를 사용해 일정 점수 범위에 있는 사병을 한 집단으로 묶었다. 상위 4%를 1그룹, 그 다음 7%를 2그룹, 그 다음 12%를 3그룹으로 하는 식이다.

스테나인을 차용해 만든 게 현재 한국 학교의 상대평가에 의한 내신 9등급제다. 상대평가로 학생의 상대적 우열을 가리기는 쉽다. 그러나 단점이 수두룩하다. 무엇보다 학생이 무엇을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그러니 무엇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 집단의 수준에 따라 평가 결과가 좌우되는 탓에 개인의 학습효율을 체계적으로 끌어올리는 데도 어려움이 따른다(성태제, 『현대교육평가』).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는 “도달해 있는 정도가 다르고 특성이 다른 학생을 동일하게 교육하는 건 무위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학생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갖고 차별화 교육을 해야 학생을 더 잘 가르칠 수 있다는 얘기다. 학생에 대한 정보는 올바른 평가를 통해 얻게 된다. 교육에서 평가가 중요한 이유다.

정부가 학교 내신 평가 방식을 현행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성적 부풀리기 등 문제가 있어 실현 여부는 미지수다. 그러나 분명한 건 학생은 군사작전의 대상이 아니라는 거다. 올바른 평가로 학생 각자의 처지에 맞는 교육을 받게 해야 옳다. 현대판 ‘성균관 학령’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