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책임 논란보다 마지막까지 구명에 매달릴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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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천안함 침몰을 둘러싸고 해군의 초기 대응에 허점이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폭발 직후 떨어져 나간 함미(艦尾)를 찾기까지 너무 긴 시간이 걸렸고, 그나마 해군이 아닌 어선이 먼저 발견했다는 질책이 쏟아지고 있다. 진해항에 있던 소해함이 현장 도착까지 시간이 너무 걸려 떨어져 나간 함미 탐색이 늦어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 해군과 해경의 합동 구조 과정에서 해군보다 해경이 더 큰 역할을 했다는 따가운 시선도 있다. 함미 발견이 늦어 실종자 수색작업이 지연된 것은 아쉬움이 큰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 시점에서 사고 원인과 사후 대처 과정에 대한 지나친 논란은 사태를 수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해군의 대응에 문제점이 있었다면 사태 수습이 끝나고 사고 전반에 대한 면밀한 조사 결과가 나온 뒤 그걸 토대로 비판하고 문책해도 늦지 않다. 아직은 실종자 생존 확인과 구출작업에 최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이번 사태는 이제껏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초유의 비극이다. 아직 침몰 원인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북한의 공격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침착하고 신속하게 상황 대처를 하기보다 논란에 몰두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애타는 실종자 가족들의 심정을 헤아려서라도 지금은 말보다 행동이 중요한 시점이다. 격앙된 상태에서 사태 파악도 충분히 안 된 채 이런저런 말을 하기보다는 당장 할 일부터 해야 할 때다. 당국도 초기대응이 잘됐느니 하는 식의 발언은 자제해야 한다. 그보다는 사건 경위와 구조 과정을 투명하고 소상하게 밝힘으로써 온갖 억측이 난무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인터넷 등에서 유포되는 온갖 음모론은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북한군 특수부대의 만화 같은 작전의 결과라느니, 천안함 승조원이 일으킨 ‘제2의 김일병 사건’이라는 식의 터무니없는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현재로선 어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상식을 벗어난 무리한 주장으로 실종자 가족과 국민들의 감정을 격앙시키고 판단을 흐리게 하는 행위는 구조와 수습에 방해만 될 뿐이다.

전문가들은 침몰된 배에 갇힌 실종자가 생존할 수 있는 한계를 최대 69시간까지라고 보고 있다. 그 시점은 어제 저녁으로 지났다. 그러나 인간이란 종종 기적을 만들어낸다. 극한 상황에서 도저히 생존하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이 살아나오는 일을 우리는 숱하게 목격해 왔다.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해선 안 된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하지 않던가. 인간 승리의 기적을 일궈내도록 모두가 정성을 모을 때다.

가뜩이나 지금은 군사적으로도 비상상황이다. 만의 하나 북한의 소행으로 확인된다면 크나큰 안보 위기로 직결된다. 섣부른 질책과 논란으로 해군은 물론 전체 군의 사기에 악영향을 끼치는 사태는 절대 금물이다. 모두가 자중하면서 실종자 구명과 수습을 성원하는 한편으로 북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춰나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