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직자 취업제한 잘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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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금융감독원 고위 간부가 퇴직 후 민간 증권사의 임원으로 옮기려다 사상 처음으로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지 못해 취업이 불가능하게 됐다. 공직자들이 퇴직 후 생계 문제로 불안할 수도 있고, 한번도 승인이 거부된 적 없었던 관행의 형평성 차원에서 억울할 수도 있다.

전문성과 경영 능력을 갖추면 스톡옵션을 받고 취직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공직자라는 이유만으로 유능 인사의 취업을 제한하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근원적 회의가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런 점들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그래도 이번 결정은 대승적 차원에서 잘됐다고 생각한다.

공직자윤리법이 1981년 제정된 것은 공직자의 부정한 재산 증식과 공무집행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으며 이를 위해 퇴직 공직자의 취업 제한 조항을 뒀다.

즉 공직자 윤리법 제17조는 "퇴직 공직자들은 퇴직일로부터 2년간 퇴직 전 3년 이내에 담당했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기업체에 취업할 수 없다" 고 규정하면서, 다만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았을 때는 가능하다는 단서를 붙였다. 문제는 이런 단서 조항이 광범하게 인정됨으로써 그동안 퇴직 공직자의 취업 신청이 한번도 부결된 적이 없었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공직자들은 별다른 거리낌 없이 사기업에 일자리를 만들기도 했고, 그런 자리를 많이 만드는 장관이 유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얼마 전 공정거래위원회의 '하극상(下剋上)' 파문에서 보듯 인사 적체의 해소가 중요하지만 사기업 임직원들의 입장에서 보면 '차별대우'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 관치 경제나 인맥 및 학연 등에 입각한 로비 문화가 내막적으로 심각한 수준임을 감안한다면 공직자들의 사기업 취업에 엄격한 제한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당장은 유능한 공직자들의 취업 제한이 초래할 손실이 아깝기는 하지만 일정기간이 지난 뒤의 취업이 관행화된다면 정경 유착의 고리를 끊으면서 전문성을 살리는 풍토를 만들어갈 수 있다. 이런 관행이 사기업에 정착될 때 공기업 낙하산 인사까지 없애는 공직자 풍토를 확산시켜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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