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병의 전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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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호 10면

나는 오후 내내 큰 녀석의 전화를 기다린다. 5주간의 신병훈련을 마친 아들이 자대 배치받는 날. 일곱 시 넘도록 전화는 오지 않고 나는 휴대전화기를 자주 확인한다. 신병교육대가 인터넷에 열어둔 카페에서 수료식 동영상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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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훈련소에 갔던 20년 전에 비해 군은 말 그대로 투명해졌다. 덕분에 나는 아들 녀석이 어제는 각개전투를 했고 오늘은 화생방 훈련을 받는다는 것을 안다. 사진과 동영상에서 녀석을 찾아 격려와 응원의 글을 남긴다. 안심과 신뢰는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무엇보다 대대장을 비롯, 중대장과 조교들의 사진까지 공개되어 있어 마음이 놓였다.

12분쯤 지나자 수료식 동영상에는 대대장이 훈련병들과 악수하는 장면이 나온다. 군악대가 연주하는 행진곡풍 음악이 백뮤직으로 깔리는 가운데 대대장은 이등병 한 명 한 명과 모두 악수한다. 아마 나처럼 눈이 빠져라 자식놈 얼굴을 찾고 있는 부모에 대한 신병교육대의 배려일 것이다. 이등병 계급장을 모자와 군복에 단 훈련병들은 군기가 바짝 들어 대대장과 악수할 때 자신의 관등성명과 각오를 외친다. “이, 병, 아, 무, 개, 최선을, 다하는, 군인이, 되겠습니다!”

요즘 군대는 천편일률적이지 않다. 각오가 제각각이다.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군인다운 군인이 되겠습니다, 일당백의 군인이 되겠습니다, 나라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군인이 되겠습니다, 패기와 열정으로 군생활을 하겠습니다 등등.

아들 녀석은 대체 어떤 각오를 말할지 나는 궁금했다. 아들에겐 자신의 능력과 미래를 낙관하는 버릇이 있다. 그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다. 드디어 아들 차례다. “이, 병, 김, 휘, 강, 조국, 제일의, 병사가, 되겠습니다!” 역시 아들다운 각오다.

그는 조국 제일의 병사가 되려는 것이다. 아니 이미 된 것 같다. 목소리는 우렁차고 눈빛은 날카롭다. 그는 조국 제일의 병사니까.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고 눈물이 날 것 같다. 이번 겨울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을 경신하고 금메달을 딴 김연아를 보는 감동에 육박할 정도다. 나는 동영상을 몇 번이고 되돌려서 본다. 조국 제일의 병사가 나오는 18분40초부터 50초까지를.

감동의 천적은 반복이다. 열 번쯤 거듭해 보니까 감동도 시들해진다. 여전히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이번에는 하품 때문이다. 그때 전화가 왔다. 아들이 배치받은 부대의 포대장이다. 그는 조국 제일의 병사가 소속한 부대의 지휘관답게 친절하게 부대 주소와 전화번호, 면회일자 등을 안내해준다. 그리고 잘 보살필 테니 염려하지 말라는 당부도 한다. 게다가 아들 녀석을 바꿔주기까지 한다. 조국 제일의 병사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잘 지냅니다. 부대 분위기도 좋고 다들 잘 대해줍니다. 포대장님도 좋으신 분 같습니다. 엄마와 겸이는 잘 지냅니까?”
아들은 조국 제일의 병사답게 종결어미로 ‘다’ ‘까’만 사용하는 군대 말투를 쓴다.

“우리는 다 잘 지낸다. 네가 걱정이지. 힘들진 않니?”
내 말이 너무 다정스러웠던가? 아들은 고민을 털어놓는다.
“상관이나 선임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을 때는 ‘잘 못 들었습니다’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됩니다.”
“뭐라고 하는데?” “네?”
“넌 뭐라고 하느냐고?”
“네? 이렇게 말한다고요.”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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