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전망대] 거꾸로가는 중국 '언론시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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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이달 초 중국 전투기-미국 정찰기 충돌사건의 현장인 하이난(海南)섬을 찾았을 때였다. 한 중국 기자는 '풍요 속의 가난' 이란 말로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다.

이 기자는 "전국 언론에 보도통제가 내려졌다. 오직 신화사 기사만 받아 신문을 제작하고 있다" 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현장에 있지만, 현장을 전할 펜을 빼앗긴 기자의 표정은 우울했다.

가오잔(高瞻) 등 미국 국적의 중국인 학자들이 최근 줄줄이 국가안전부에 연행된 사건도 정작 중국인들만 모르고 있다. 철저한 뉴스 통제 탓이다.

이같은 '펜대(筆桿)장악' 은 앞으로도 한층 심해질 태세다. 홍콩 명보(明報)는 중국 중앙선전부 내 고위 소식통을 인용, "국가적 비상시국에 효율적으로 대처키 위해 '총대(槍桿.군부)' 는 물론 '펜대' 를 더욱 견고하게 장악할 것" 이라고 보도했다.

선전부는 이미 각 보도기관에 "당직 책임제를 도입하라" 고 지시했다. 책임추궁을 위한 조치다. 군장악을 위해서는 '군대 국가화' 란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

언론 통제의 이유는 '유고나 옛 소련 같은 허무한 붕괴를 막기 위해서' 다. 중국 정부가 작금의 중.미 긴장상황을 붕괴 직전의 유고나 옛 소련 같은 '절대적 위기국면' 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얘기다.

주룽지(朱鎔基)총리는 지난 99년 "여론을 감독하고, 인민을 대변하며, 정부를 감시하고, 개혁을 이끌어야 한다(輿論監督, 群衆喉舌, 政府鏡鑑, 改革尖兵)" 는 이른바 '16자 강화' 를 언론에 당부했다.

당시 중국 언론은 감동했다. 정부 최고지도부가 처음으로 '언론 자유' 와 '언론의 감시기능' 을 공개적으로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역사는 다시 원점으로 역류하고 있다. 앞으로 중국 언론은 문혁(文革) 당시의 '한목소리 언론' 으로 되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홍콩 시사잡지 아주주간(亞洲週刊)의 추리번(邱立本)총편집은 이를 놓고 " '16자 강화' 가 '부러진 16촌 장검' 으로 변했다" 고 한탄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간과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진짜 현명한 중국 국민은 이제 관영 매체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오히려 인터넷 소식지 등을 통해 여론을 탐색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언론 통제는 중국 속담대로 '왕개미가 나무 흔들기' 임을 중국 정부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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