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총리 사과하여 국회 정상화시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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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회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이해찬 총리의 발언이 원인이다. 그는 유럽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가 퇴보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는 "한나라당은 지하실에서 차떼기를 하고, 고속도로에서 수백억원을 들여온 정당 아니냐. 그런 정당을 좋은 당이라고 할 수 있나"라고 했다. 한나라당이 이 총리의 파면을 요구하고 국회 의사일정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따라서 상황은 이 총리가 풀어야 한다. 이 총리는 한나라당과 국민에게 사과하라. 해당 발언은 총리답지 못하다는 점에서 가장 문제다. 품위와 격조도 없고,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다. 더구나 대정부 질문은 시장터에서의 갑론을박이 아니다. 정부의 책임자와 국민의 대표가 국정을 논하는 자리다. 정부와 국회 간의 대화채널인 것이다. 이 자리에서 상대의 존재를 부인하고 어떻게 상생이 가능한가. 야당의 존립 근거를 흔드는 동시에 다당제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라는 비난을 들어도 이 총리는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많고 적은 차이는 있지만 어디 부정한 대선자금을 받은 곳이 한나라당뿐인가. 그럼에도 마치 자신은 선이요, 상대는 악이라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은 독선일 뿐이다.

같은 맥락에서 열린우리당에서 제기되는 대야(對野)강경론도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도대체 국정을 맡은 여당인지 의심스럽다. 이 같은 강경 대응 끝에 정치를 엉망으로 만들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 식의 강경론이 과거 독재시절과 무엇이 다른가. 싸움판 정치에 국민은 신물이 나 있다.

야당도 생각할 점이 있다. 야당 내부에서도 최근 여당을 상대로 거세게 받아치자는 주장이 확산하고 있다. 당장이야 강경론이 알기 쉽고 선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 와중에 국정과 민생은 골병이 든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상대방에 대해 '좌파정권' '주사파'라고 딱지를 붙이고 대통령을 모독하는 발언을 하는 것 역시 저질정치다. 나라가 어렵다. 여야 모두 한발씩 물러나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