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 기억할 이름, 우현 고유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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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우현은 그림과 사진에 능해 이 자화상과 문화재 스케치 등을 여러 점 남겼다. [열화당 제공]

“요즘 전별(餞別)이란 단어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전별금 주는 일도 드무니 사어(死語)라 할 수 있겠지요, 죽어가는 말.” 지난 13일 오후, 파주출판도시 열화당 사옥의 ‘도서관+책방’. 한국미술사학의 개척자인 우현(又玄) 고유섭(1905~44)의 전집 2차분 출간기념회장에서 만난 학자 몇 분이 나눈 얘기 중 한토막이다. 전집 마지막 책으로 간행될 『전별의 병(甁)』 앞에서 우리 시대의 말글살이가 얼마나 큰 변화를 겪었는가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고유섭은 일제강점기 경성제대에서 조선인으로서는 처음 미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하고 개성부립박물관 관장으로 일했던 한국미술사학계의 큰 어른. 2005년 탄신 백주년을 맞아 펴내기 시작한 10권 전집은 후학인 진홍섭(92), 황수영(92) 선생의 노력으로 빛을 보게 됐다. 70년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옛 글을 읽기 어렵게 된 젊은 독자를 위해 문장을 다듬고 편집에 신경 쓴 공으로 『조선탑파(塔婆)의 연구』 『고려청자』 『조선건축미술사 초고』가 새 생명을 얻게 됐다.

이날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원로 미술사학자들은 ‘고유섭 아카이브를 준비하며’란 이름으로 전시되고 있는 우현의 유품을 둘러보며 그리움에 젖었다. 강우방(69)씨는 “선생이 마흔 살 한창 나이에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한국미술사학계가 훨씬 뼈대 있게 발전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기웅 열화당 대표는 “이렇게 귀한 책들이 자꾸 잊혀져가는 것은 돈 문제가 아니라 생각의 문제”라고 걱정했다. 고유섭 전집 제작에 5000만원을 협찬한 GS칼텍스는 피겨스케이터 김연아에게도 최초로 5000만원을 후원한 기업이다.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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