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를 다지자] 69. 운동선수 체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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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LG 스포츠의 메디칼 디렉터로 일하면서 상상도 하기 힘든 황당한 일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프로농구팀 LG세이커스는 A대학과 연습경기를 했는데 대학팀 감독은 게임에 지자 주전급 선수들의 따귀를 수십대씩 때렸다. 그 감독은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지 심한 구타에 이어 선수들에게 원산폭격을 시켰다. 우리 팀 선수들이 식사하는 동안 대학팀 선수들은 코트에서 맞고 벌서고, 그리고 또 연습했다.

성인들이 소속된 대학팀에서, 그것도 명문대학인 A대학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다른 대학도 사정은 비슷하다.

직접 보거나 TV를 통해 본 고등학교나 중학교 체육지도자들의 폭력은 끔찍하다 못해 소름이 끼친다. 심지어 초등학교 선수들에게도 폭행이 가해진다. 절대 반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일방적인 폭력이기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마련이다.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프로선수 C씨는 좋은 신체조건에도 불구하고, 대학 시절까지 다치기만 했다. 맞으면서 억지로 하는 운동이니 다치기 쉽고,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못해 부상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C선수는 프로에 입단하기 전까지 '즐기는 운동' 이라는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추어 팀의 훈련을 보면 선수들이 감독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군인들처럼 일사불란하게 "예!" 를 외치는 것이 다반사다. 감독의 지시에 무조건 긍정적으로 대답하지 않으면 반항한다고 얻어맞기 때문이다. '맞지 않기 위해' 선수들은 창의성을 잃고 감독의 지시에 따라 기계적인 움직임을 반복할 뿐이다.

"한국 선수들은 왜 질문을 하지 않는가□" 라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의문에 대한 정답은 여기에 있다. 맞으면서 즐길 수는 없는 것이다. 맞으면서 하는 스포츠는 발전할 수도 없다.

어은실 <연세대 의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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