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단일팀 무산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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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0년 만의 단일팀 구성 꿈이 깨져버렸다. "

28일 북한측의 '남북탁구 단일팀 구성 불가' 통보에 접한 정부와 탁구협회 관계자들은 당혹해 하는 빛이 역력했다.

특히 통일부 당국자들은 임동원(林東源)장관 취임 하루 만에 터져나온 단일팀 무산이 자칫 남북관계 경색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웠다.

다음달 23일부터 오사카(大阪)에서 열릴 예정인 제46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 출전은 이미 남북한간에 인원과 선수단 호칭.응원가까지 91년 지바(千葉)대회 때의 전례를 따르기로 합의해 놓은 상태였다.

보름 전 방북했던 김한길 문화관광부장관은 귀국 후 "북측과 첫 문화장관급 회담을 갖고 개막 3주전부터 합숙훈련에 들어간다는 내용 등 단일팀 출전의 구체적인 대목까지 논의했다" 고 밝혔었다.

물론 서면약속도 뒤짚는 북한의 행태도 문제지만 구두(口頭)합의만으로 단일팀 참가를 추진해온 정부도 무르게 일처리를 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탁구협회 관계자는 "지바대회 때보다 한달 정도 준비기간이 짧았던 것은 사실" 이라며 "하지만 장웅 북한 체육지도위 부위원장이 '10년전 전례에 따르면 실무협의도 필요없을 정도' 라고 말했는데 급작스레 이런 통보가 왔다" 며 아쉬워했다.

단일팀 구성에 필요한 ▶선수 명단▶훈련 일정▶장비 제작▶세계탁구협회와의 행정사항 등 네가지 준비에 별 문제가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정치적 이유 때문일 것" 이란 것.

통일부 당국자는 "북측의 단일팀 거부는 5차 남북 장관급 회담의 일방불참과 맥이 닿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3월 8일.워싱턴)에서 나타난 대북 강경기조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

아직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의 틀이 잡히지 않은 데다 우리 정부의 입장도 어정쩡한 상태인 만큼 대남 접근의 속도를 조절해 보겠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다음달 3일 열릴 4차 적십자 회담이나 태권도 교류 등도 난기류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4월 중 ▶최고인민회의(5일)▶김일성 생일(15일)▶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 러시아 방문(중순께) 등 내부 일정이 빡빡해 남북대화에 선뜻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북한이 6.15 공동선언의 판을 깨지는 않을 것인 데다 金위원장의 답방 분위기 조성 문제도 걸려 있어 머지않아 남북 당국간 대화와 사회문화 교류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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