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건강증진세' 발상부터 안이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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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원길(金元吉)보건복지부장관이 건강보험 재정 위기와 관련해 목적세 신설 가능성을 내비쳐 정부가 마련 중인 종합대책에 강한 의문을 갖게 한다. 그는 어제 민주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목적세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면서 국민 반발이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국민의 저항이 심한 것은 (재정이 파탄나) '의보문' 을 닫는 것" 이라고 말했다.

물론 金장관은 공식 검토를 거치지 않은 사견임을 강조했지만 그는 보건복지 행정의 최고 책임자다. 따라서 그의 말은 단순히 사견일 수 없으며 정부 내 또는 당정간 의견 조율을 거쳐 나온 것으로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른바 '건강증진세' 신설 문제는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결론부터 말해 우리는 건강증진세 신설은 잘못된 처방이라고 본다. 의료 보험료를 대폭 인상할 경우 국민 반발이 예상되자 세금을 거둬 재정 적자를 메우겠다는 행정편의주의적 대책이다. 한마디로 주머니 돈은 조금 내도록 하고 쌈지 돈을 털어내겠다는 조삼모사(朝三暮四)식 발상 아닌가.

더구나 목적세 신설은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기업 경쟁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건강증진세란 수익자부담(受益者負擔)원칙과 사회보험 취지에도 어긋난다. 의료서비스를 받을 필요가 없는 건강한 사람들이 의료 보험료와 별도의 진료비(세금)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건강증진세 신설 여부를 둘러싼 정부.여당의 말바꾸기도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다. 복지부는 얼마 전 여당 일각에서 건강증진세 신설 추진 얘기가 나오자 이를 공식 부인했다.

민주당 역시 지난 19일 당이 마련한 의보 대책을 설명하면서 서민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건강증진세 신설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못박았다.

이후 보건복지부장관과 여당 정책위의장이 바뀌었다. 그렇다고 이미 발표한 내용까지 없던 일로 하겠다는 것인가. 정부는 목적세 같은 안이한 투망식이 아니라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누수(漏水)차단 등을 통해 의보 재정을 튼튼히 할 수 있는 정교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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