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災殃을 피해가는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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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마오쩌둥(毛澤東)의 문화대혁명(문혁)과 크메르 루주 혁명운동은 모두 초기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1966년부터 76년까지 중국을 소용돌이로 내몬 문혁은 절대적인 평등사상을 내걸고 모든 기성의 권위와 가치체계를 뒤엎으려 했던 혁명운동이었다.

*** 독선.오만은 반드시 실패

순수한 정신과 순결한 삶 자체로 등장했던 키우 삼판과 이엥 사리의 크메르 루주 혁명운동가들도 미국과 결탁한 캄보디아의 타락한 지배층을 내몰고 사회주의의 구현을 목표로 내세웠다.

문혁은 수천만, 수억명의 기득권층은 물론 학생들을 인간개조운동이란 명목으로 지방에 수년간씩 내려보냈다(下放). 수천만명이 이 과정에서 생명을 바쳤거나 폐인이 됐다. 국가의 기능은 거의 마비상태였고, 교육은 엉망진창이 됐다. 크메르 루주는 집권 후 프놈펜 시민의 절대 다수를 부패혐의로 지방으로 강제 이주시켜 '킬링필드' 라는 기록성 영화와 같은 결과를 만들면서 나라를 황폐화했다.

이 과정에서 홍위병과 어용학자들이 동원됐고, '모자' 가 양산됐다. 수정주의자, 악질 지주, 극우반동주의자, 미제(美帝)의 주구, 인민의 적, 국민당 첩자 등의 모자를 홍위병들로부터 쓰게 된 사람은 그날로 그의 이력이 사실상 끝장났다.

과거를 캐는 작업이 홍수를 이뤘다. 그 폐해가 얼마나 참담했는가는 중국인들이 그 기간을 '잃어버린 10년' 이라고 부르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중국인들은 사상과 이념의 투쟁이 모든 것에 우선했던 문혁을 일종의 역사의 블랙홀로 본 것이다.

그러나 그런 혁명운동도 알고보면 권력의 탈환이나 쟁취를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었다. 독선과 오만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 혁명운동을 관통했던 정신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毛와 크메르 루주가 국민을 2분법으로 쪼개는 데 진력함으로써 나라를 거덜냈지만 수정주의자로 박해받던 덩샤오핑(鄧小平)은 명재상 저우언라이(周恩來)의 비호아래 어렵게 살아남아 국민이 편안하게 밥먹을 수 있는 국민통합의 정치로 국가재건을 이뤄냈다.

시선을 우리나라로 돌리면 문민 정부에서 부터 국민의 정부에 이르기까지 문혁이나 크메르 루주의 혁명운동에는 결코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 엇비슷한 심리현상이 일부 정치세력과 부류들에게 있지 않나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군사정권 30여년의 적폐가 하도 컸던 탓에 사회를 바로잡으려는 정치세력과 그 동조자들의 움직임은 정당성을 확보했고 국민이 진심으로 개혁의 성공을 빌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것이 시대정신이다.

문민정부나 국민의 정부 등 민주화 세력이 개혁의 나팔을 불면서 그것을 밀어붙였을 때 그에 반발하는 큰 소리가 나올 수가 없었고 또 나온 기억도 없다. 문제는 그들의 개혁이 현실에 맞는 효율적인 방안을 내놓지 못해 기우뚱거리거나 준비 안된 개혁을 우격다짐으로 시행하면서 야기됐다.

국가경영이라는 노하우에 취약한 민주화 세력은 자기 잘못을 자성하는 데서부터 출발해 더 나은 도약을 도모하려는 노력을 하기보다 자기 실패의 원인을 남에게 뒤집어 씌우기 위해 속죄양을 찾는 방법을 택했다.

그것이 바로 모자를 씌우고 과거를 캐는 작업으로 나타났다. 수구반동.극우보수.반통일냉전주의자.기득권 계층이라는 말이 집권측이나 그 언저리에서 자연스럽게 나왔다. 이들의 조직적인 반발과 저항 때문에 개혁이 좌절되고 있으므로 손을 봐야 한다는 논리다.

*** 과거보다 미래로 달려야

문민정부의 한 핵심인사가 "우리가 아스팔트에서 민주화운동을 하고 있을 때 당신들은 단물이나 쪽쪽 빨아먹고 있지 않았느냐" 고 퍼붓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국민의 정부도 그런 기조엔 변함이 없다. 동시대의 애환을 같이 했던 일부 세력이 어느 날 갑자기 진공상태에서 나온 순백의 인간처럼 '찢어!' 운동에 앞장서는 것을 보면 기가 찬다.

독선과 오만에 기초한 '찢어!' 의 정치는 오래 갈 수 없다. 문혁이나 크메르 루주에서 보듯 재앙만 초래할 뿐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국민을 통합해 나라를 제대로 굴러가게 하는 鄧류의 지도력을 보여야 노벨평화상 수상에 값하는 지도자가 될 것이다. 모처럼 민심수습 및 국정쇄신용 개각도 한 마당인 만큼 제발 과거지향적인 '찢어!' 의 정치 대신 미래지향적인 화합과 통합의 슬기로운 정치로 남은 임기를 장식하기를 고대한다.

이수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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