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소로스와 버핏 투자철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조지 소로스가 세계의 금융시장을 일거에 뒤흔들 수 있었던 요인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인터넷의 발달에 따른 전자거래 시스템의 활성화다. 이로 인해 지역적인 장벽이 해소됨으로써 막대한 시세차익을 동시다발적으로 얻을 수 있었다.

또 하나는 국제금융시장의 변화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생겨난 외환시장의 변화에 각국의 정책 당국자들이 효과적인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는 사이에 틈새를 공략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성공을 가능케 했던 정보통신산업(IT) 등의 퇴조에 따라 헤지 펀드의 위력도 점차 수그러들고 있는 추세다.

현대 자본시장에서 그와 비견되는 인물을 꼽는다면 20세기 최고의 증권투자자로 불리는 워런 버핏이다. 그는 소로스와는 상당히 다른 투자방식과 세계관을 갖고 있으면서 존경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다.

미국 월가의 전설적 투자자 피터 린치조차도 버핏의 전화가 왔다고 하자 처음엔 농담으로 받아들이다가 "버핏이 (내게) 전화를 하다니!" 하고 놀랐을 정도다. 헤지 펀드와 닷컴열풍에 잠시 잊혀졌던 버핏이 증시침체 속에서도 고수익을 내자 세계 언론과 투자자가 다시 주목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시장이 비합리적으로 움직일 때가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은 같다. 그러나 버핏은 "혹시 어떤 어리석은 사람들이 좋은 회사의 주가를 엄청나게 싼 가격에 팔려고 내놓지는 않았는지" 를 살피는 쪽이며, 소로스는 "금융시장이 방향을 제대로 잡아가고 있나" 를 살피는 편이다. 버핏 역시 소로스처럼 헤지 펀드의 투자원칙인 재정거래(돈을 빌려 싼 곳에서 사서 비싼 곳에서 팔고 돈을 되갚아 위험부담 없이 수익을 챙기는 기법)를 종종 활용하긴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투자철학은 큰 차이가 있다. 소로스는 특정 국가의 정책기조를 비판하거나 자신의 투자방향을 공공연히 밝힘으로써 시장의 방향에 큰 영향력을 미친다. 바로 이 과정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거두어 왔다. 그의 투자대상이 외환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아 이러한 투자방식은 때때로 특정 국가를 위기 상황까지 몰고 간다.

반면 버핏은 성급한 투자자들이 어디에 투자하느냐고 물을 경우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으로 일관한다. 명성만 믿고 모르는 곳에 함부로 뛰어드는 투자자들의 생리를 알기 때문이다. 사실 버핏의 이런 태도는 모르는 곳엔 절대 투자하지 않는 그의 투자철학에서 비롯한다.

버핏의 투자방식과 그것이 용납되는 투명한 시장환경은 우리에게도 절실한 과제다. 이러한 시장환경은 소로스식의 투기적인 공격으로부터 우리 경제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버핏과 그의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경영자와 금융인의 상(像)에 대해서도 시사점을 주고 있다. 버핏은 합리적이고 솔직하며 업계의 관행에 도전하는 경영자가 있는가를 반드시 따져 왔다. 그레이엄은 1920년대 대공황으로 자신에게 돈을 맡긴 투자자가 손실을 보자 원금이 회복될 때까지 무보수로 일할 것임을 밝혔고 그대로 실천에 옮겼다.

최희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 경제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