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신문 고시' 서둘 일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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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거듭된 지적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신문고시(告示)' 의 부활을 앞당기려는 최근의 움직임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공정위는 2월 말 발표한 초안 거의 그대로 고시를 확정, 이르면 4월 초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최근 언론을 대상으로 평기자까지 세무조사 계좌추적 대상에 포함시키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이런 판에 공정위가 고시 제정을 서두르는 걸 볼 때 '보이지 않는 손' 이 작용한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판매.광고 등 전분야를 망라한 이번 고시에는 신문업계의 해묵은 관행의 해결책이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자율로 처리될 문제지 정부가 개입할 사안은 아니다. 더군다나 '사실상의 담합' 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런 규제를 공정거래를 담보해야 할 공정위가 앞장서 만들겠다니 그 의도를 알 수 없다.

신문협회의 지적처럼 공정위는 1999년 말 '협회의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규제개혁 차원' 에서 고시를 없앴다. 그래놓고 불과 1년여 만에 더욱 강도 높은 고시를 만들겠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시장경제원리에 배치되는 '공동판매제' 추진 계획은 없다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별도 법인인 신문지국에 대해 두개 이상의 신문판매를 하라, 하지 마라는 식도 악용의 소지가 크다. '대형 신문사들이 광고료 등을 일방적으로 높게 책정하는 가격 남용행위를 막겠다' 는 발상도 신문사는 많고 광고는 제한된 수요자 시장이란 현실을 무시한 것이다.

또 지적재산권 대상인 신문을 놓고 공정위가 무슨 기준으로 '적정가격' 을 매길 수 있겠는가. 유가(有價)부수 기준으로 무가지를 10% 이내로 규제하겠다는 것도, 신문.잡지 발행부수 공사기구(ABC)가 제대로 작동할 때나 가능한 일이다.

이런 숱한 문제를 무시한 채 서둘러 신문의 보급과 광고체계에 압박적 규제를 강화하려는 공정위의 움직임은 자율과 경쟁을 생명으로 하는 기본 책무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공정위는 "신문시장만의 과점해소를 목적으로 규제를 위한 별도 조항을 현행법에 규정하거나 특별법을 만드는 것은 헌법 제37조 2항에 규정된 '과잉금지의 원칙' 에 위배된다" 는 한국언론2000년위원회의 지적을 경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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