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학의 위기 풀자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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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대 교수의 84%가 서울대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 것으로 본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서울대의 위기는 비단 서울대만의 위기가 아니라 우리나라 대학 모두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교수 진입.퇴출 쉽게 돼야

대학이 처한 위기는 대학이 사회에서 필요한 새로운 지식과 전문인력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데 있으며, 이러한 위기는 대학간에 경쟁환경이 조성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초래된 것으로 보여진다. 여러 대학이 경쟁을 통해 제나름대로 비교우위를 가짐으로써 '제일 좋은 대학' 중의 하나가 될 때, 대학의 위기는 해소될 것이다.

여러 대학이 제일 좋은 대학이 된다면, 젊은이들도 대학에서 성취한 정도에 따라 평가받게 되고, 학벌사회가 초래하는 병폐도 줄어들며, 초.중등 교육도 개선되고, 결국 사회가 건강해질 것이다. 여러 대학이 좋은 대학으로 발전하려면 첫째, 교수의 진입.퇴출 장벽이 제거돼 대학간에 교수이동이 빈번히 이뤄져야 한다.

대학에서 거의 모든 일의 성패는 교수진의 자질에 달려 있으며, 진정한 의미의 좋은 대학은 우수한 교수진에서부터 시작된다. 지금처럼 대학이 거의 모든 교수에게 정년을 보장하면서 더 좋은 대학으로 발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년보장이 적절한 숫자의 교수에게만 주어질 때 더 많은 교수가 교육과 연구 업적을 쌓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학자로서의 업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정년을 보장받은 교수는 신임교수를 평가할 때 경쟁적인 입장이 아니라 보다 공정한 전문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다. 범위가 제한된 정년보장은 대학발전을 위한 이상적인 제도다. 그러나 교수노조가 바라는 무조건적인 정년보장은 모든 대학을 파괴시킬 뿐이다. 교수의 진입.퇴출이 자유롭다면 설령 부당하게 퇴출당한 교수라도 타대학에 의해 보호받을 기회가 더 많아질 것이다.

둘째, 서울대에도 공기업 구조조정 논리를 적용하자. 서울대의 구조조정은 여러 대학이 함께 발전하는데 필요한 공정경쟁 환경을 구축해 준다. 나라가 가난했던 과거에는 정부가 서울대로 하여금 거의 모든 분야의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케 했다.

시대가 바뀌면서 개인의 적성보다 성적에 맞춰 대학을 선택하는 경향이 가장 심하게 된 서울대는 전공과 부합한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이제는 사립대학에서도 훌륭한 경영인.교사.법조인.예술인 등은 납세자의 부담 없이 얼마든지 양성될 수 있다.

민간부문이 더 잘 하는 분야에서까지 서울대가 세금을 남용하면서 독점의 폐해를 창출할 필요는 더 더욱 없다. 서울대는 국가경쟁력 제고에 필요하지만 사립대학이 감당하기 어려운 분야, 예컨대 기초학문에 전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수의 진입.퇴출이 자유롭다면 서울대의 구조조정도 한결 용이해질 것이다.

셋째, 대학경영에 보다 많은 자율을 허용해야 한다. 규제는 부실한 대학이 더 나빠지는 것을 막아주겠지만, 잠재력을 가진 대학이 더 좋아지는 것을 지연시키거나 저지한다. 정부의 대학정책은 규제보다 소비자에게 선택권과 거부권을 보장해 주는 시장법칙에 의존할 때 더 많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자율경영이 그 효과를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 대학 내의 구성원 중 소수가 부당한 힘을 사용하거나 또는 다수가 민주주의라는 미명으로 사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시도를 방지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즉 누가 경영권을 위임받는지를 규명하는 지배구조가 대학에서도 확립돼야 한다.

***국가시험 지역쿼터 필요

넷째, 국가가 주관하는 자격시험에 지역쿼터를 실시하자. 전문인력 배출이 지방대학에도 제도적으로 보장된다면 우수한 교수와 학생이 지방대학을 더욱 선호할 것이다. 교수의 진입.퇴출까지 자유롭다면 지방대학의 발전도 용이해질 것이다.

여러 대학이 동시에 발전하는 과정에서도 소비자.대학.교수 및 관료 등을 포함한 여러 관련자 사이에 이해충돌이 발생한다. 이들이 시장법칙을 이해하고 이해충돌을 조정할 능력을 갖게 될 때 대학의 위기도 풀려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독고 윤 <아주대 경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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