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산책] 신선한 '열린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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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주말 치러진 프랑스 지방선거는 우리에게 한번쯤 곱씹어볼 만한 교훈을 몇가지 던져준다.

동성연애자인 베르트랑 들라노에 사회당 후보가 파리 시장에 당선될 수 있는 프랑스의 사회 분위기도 그렇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반대 진영에서 그를 헐뜯기 위해 동성연애라는 단어를 들먹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동성연애를 비정상이 아닌 일종의 유전형질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공감대가 널리 퍼져 있다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동성연애자들을 비하하는 표현인 '페데' 라는 속어가 흔히 사용될 만큼 그들을 사시로 바라보는 눈도 엄연히, 그리고 적지 않게 존재한다.

따라서 일반인이라면 몰라도 유권자를 상대하는 정치인들로선 경우에 따라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커다란 결함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파리시장 선거에서 우파는 전혀 이를 선거에 활용하지 않았다.

동성연애와 관련된 추문을 한두개쯤 캐내 선거에 이용할 법도 한데 지지율이 계속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같은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

파리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정책 대결을 떠나 인신공격을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선거철만 되면 근거도 없는 온갖 흑색선전이 춤을 추는 우리네 선거 풍토와는 너무도 다른 풍경이다.

또 하나는 전국적 지명도를 내세운 낙하산 공천이 지역 주민들에 의해 단죄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자크 랑 교육장관과 엘리자베스 기구 노동장관 등 낙하산 공천을 받은 거물급 인사들이 죄다 낙선했다. 특히 정가에 큰 영향력을 지닌 랑 장관이 재선에 실패한 것은 그를 떨어뜨린 블루아 시민들조차 놀라워 할 정도다.

시민들의 요구는 간단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힘센 파트타임 시장이 아니라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며 지역발전을 위해 일하는 전문 경영인" 이라는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그동안 전문적인 행정가가 아닌 정치인들이 자치단체장직을 자신의 정치적 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이용해 왔던 프랑스 정치 풍토에 대한 유권자들의 경고였다는 게 프랑스인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이에 놀란 리오넬 조스팽 총리는 선거 직후 정부 각료들에게 앞으로 장관직과 시장직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물론 정치 문화가 다르고 사고방식이 판이한 프랑스의 경우를 우리와 직접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비방전 없이 선거를 치르고 유권자들이 표로써 정치풍토까지 쇄신하는 현장은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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