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 왜 나왔나] 조세 반발 예방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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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진념(陳稔)경제 부총리가 세금 부담의 크기를 결정하는 과세표준이 실제와 가깝게 드러나면서(課標 현실화) 늘어난 세금 부담을 줄이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국내에서도 '감세(減稅)' 문제가 관심사로 급부상했다. 재정경제부는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하면서도 가능한 부분은 올해 안에 세법을 고치겠다고 밝혔다.

감세 논의는 최근 미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추진하는 감세방안 가운데 소득세율 인하법안이 하원을 통과한 것과 관련이 있다. 미국 등 주요 국가가 세금을 깎아주면 그 나라와 경쟁하는 자국 기업의 여건이 불리하지 않도록 비슷한 수준의 감세를 해야 한다는 측면도 고려됐다. 그러나 1백조원이 넘는 공적자금 투입과 재정적자에다 앞으로도 복지정책 등 재정수요가 많은 상황에서 세금을 줄이는 것이 옳으냐에 대한 의견도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 왜 나왔나〓정부는 신용카드 사용 증가와 국세청의 징세행정 강화로 자영업자의 과표현실화율이 높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신용카드 사용금액은 78조9천억원으로 1999년(42조6천억원)보다 85% 증가했다. 음성탈루소득에 대한 과세실적도 3조5천억원으로 99년보다 1조원이 많았다. 그만큼 숨어있던 세원(稅源)이 드러난 것이다.

정부는 이같이 노출된 세원에 곧이곧대로 세금을 매기면 적지 않은 반발이 생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당초 예상했던 세입보다 13조원의 세금이 더 걷혔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까지 경기가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표 현실화의 영향도 상당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미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소득세율을 내리기로 한 것도 한국 정부로 하여금 감세를 고려하도록 작용했다. 재경부 김진표 세제실장은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 등 다른 나라들이 세율을 낮추면 우리도 세금을 줄이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며 "이 경우 세금을 줄여 경기를 살리는 것보다 자국 기업의 세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 조세 경쟁력 차원에서 검토해야 한다" 고 말했다.

경기 부양을 위한 감세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전문가들은 큰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 문형표 연구위원은 "세율을 낮추면 가처분소득이 늘어 소비지출도 증가하므로 어느 정도의 경기부양 효과를 가져온다" 면서 "그러나 현재 소비 위축은 경기보다 구조조정과 해외경제 등 불확실성에 따른 것이어서 효과가 작을 것" 이라고 주장했다.

◇ 어디서 깎나〓신용카드 사용이 늘어나면서 세원이 노출돼 세금을 많이 내게 된 자영업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감면폭을 확대하는 것이 우선 과제다. 재경부는 양도소득세를 낮추는 방안도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

이는 최근 민주당과 건설업체와의 간담회에서 주택부문의 양도소득세를 없애자는 논의가 있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 김진표 세제실장은 "지난해 건설경기 활성화 대책으로 지방의 신규주택을 취득할 때 양도세를 경감하도록 했다" 며 "3월 말까지 건설경기 회복 여부를 지켜본 뒤 경감폭 확대 여부를 결정하겠다" 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기존 주택을 팔고 새 주택을 사는 경우 기존 주택의 양도차익에 대해 10%만 과세하고▶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신규 주택을 사면 5년 동안 양도차익을 비과세하도록 했다.

중장기적으론 소득.법인세율을 조정하는 방안도 고려 대상이다.

한양대 이우택 교수는 "과표현실화율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므로 세금을 깎아줄 필요는 있다" 며 "50%를 넘는 우리나라의 간접세 비율을 고려할 때 간접세인 부가세를 낮춰야 실질적인 효과가 나고 소득재분배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고 주장했다.

송상훈.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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