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김지헌 '복수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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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백색의 게릴라가 온 산을 점령하고

툰드라의 바람은 아직 경보를 풀지 않았는데

지층 깊은 곳의 뜨거운 마그마

그 열정을 삭여……

선 문답하듯

어느새 대지를 찢고 올라오는

샛노란 꽃 대궁 하나.

- 김지헌(1958~) '복수초'

아직 잔설이 남아 있고 꽃샘바람은 사납지만 때가 되면 그 차가운 눈더미를 헤치고 수줍은 듯 방긋 얼굴을 내민 들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는 거기서 강인한 우주적 생명력과 만상이 조화하는 자연의 섭리를 깨닫는다.

흔히 생명은 뜨거운 가슴 속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사는 지구의 중심에도 항상 뜨거운 용암(마그마)이 용솟음치고 있지 않던가. 초봄의 잔설을 게릴라로, 꽃샘추위를 툰드라의 경계경보로 표현한 시인의 기지가 재미있다.

오세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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