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야마가 불러일으킨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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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후쿠야마가 촉발한 논쟁들은 그의 학문적.개인적 배경과 관련이 깊다. 그는 일본인 3세로 미국에서 태어나 활동하는 보수주의자다. 일본.미국.보수, 이 세 가지 요소는 이후 논쟁별로 그를 과대 혹은 과소 평가하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후쿠야마를 둘러싼 논쟁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1989년 『역사의 종언』으로 불거진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간의 논쟁이다. 후쿠야마는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의 붕괴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승리함에 따라 더 이상 진보는 없다며 역사의 종말을 선언하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체제 경쟁이 막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들은 이를 부정한다.

즉 동유럽의 교조적인 좌파가 몰락했을 뿐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는 건재하며 유럽연합 회원국 대다수에서 사민주의 정당이 집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후쿠야마는 유럽의 사민주의도 고전적 사민주의와 영국의 블레어가 주창하는 '제3의 길' 과 같은 현실주의적 중도노선으로 나뉘어 있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미국식 자유주의 모델을 채택한 현실적 사회주의가 유럽좌파의 대세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프랑스의 고전적 사민주의측은 '제3의 길' 은 하나의 유행에 불과하며 이미 그 한계점을 보이고 있다고 재반박한다.

둘째는 95년 『트러스트』 발표 이후 불거진 저(低)신뢰.고(高)신뢰 사회 논쟁이다. 후쿠야마는 한 나라의 경쟁력은 그 나라가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신뢰와 사회적 자본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저신뢰.고신뢰 사회를 구분하는 그의 기준이 사회적 자본의 축적 여부와 같이 너무 단순하며 이는 일종의 '결과론' 일 뿐이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미 프린스턴대 사회학 교수 알렉산드로 포르테(미 사회학회 회장)같은 학자는 후쿠야마식 논의가 사회적 자본의 원천과 그것이 가져오는 이익 혹은 효과를 혼동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후쿠야마의 논리에는 어떻게 하면 사회적 연대와 신뢰를 창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설명은 없고 단지 '사회적 연대와 신뢰가 풍부해서 발전했다' 는 식의 설명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90년대 후반 발발한 아시아 경제위기의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불거진 '아시아적 가치' 논쟁이다. 많은 서구 학자들이 아시아 금융위기를 가져온 원인으로 유교적 가치가 배태한 정경유착과 인치를 지목했을 때 후쿠야마는 이에 반대하였다. 문제는 정책의 실패이지 아시아적 가치와 같은 문화적 배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동시에 아시아적 가치와 민주주의가 함께 발전할 수 없다는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나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의 주장을 일축했다. 전체주의 통치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주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한국.대만은 이미 아시아에서 아시아적 가치와 민주주의가 병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했다.

이상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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