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말보다 실천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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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엊그제 '국민과의 대화' 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감' 을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金대통령은 "4대 부문 개혁의 테두리는 잡은 만큼 하반기부터는 경기가 활성화할 것" 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어제 경제장관들도 기자회견에서 "자신감을 갖고 개혁노력을 계속한다면 하반기부터 경제가 회복될 것" 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러한 '자신감' 에 대해 전혀 이의가 없다. 하반기부터 경제가 좋아질 수도 있고, 지나친 비관론도 명백히 경계돼야 한다. 다만 우리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국민의 자신감은 정부의 말로만 살아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의 불안감은 정부 정책이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해 생긴 것이고, 따라서 대통령이 아무리 자신감을 얘기해도 국민이 믿지 않는다면 공언(空言)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신뢰를 확보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이며, 비판과 비관론을 겸허히 수용하는 자세다.

그러나 국민과의 대화나 경제장관 회견에선 아무래도 이 점이 미흡한 것 같다.

대통령은 "금융기관의 자율성은 보장되고 있고 앞으로도 완벽히 보장될 것" 이라고 하면서 그 증거로 정부가 금융기관에 대해 대출 지시를 하지 않으며, 기관장도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결정토록 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렇다면 현대그룹에 대한 분양권 담보대출과 수출환어음 매입 한도 확대, 그리고 회사채 신속 인수방안에 참여하지 않은 제일은행에 대한 정부의 제재 발언 등은 무슨 영문인가. 금융기관의 자율을 보장할 생각이었다면 대통령은 "금융기관들이 담보에 집착, 신용대출을 꺼리는 후진적 관행을 시정해야 한다" 는 말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 대출은 그야말로 자율적으로 결정돼야 할 은행 몫이다.

또 대우차와 현대그룹이라는 난제가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공정한 심판자와 시스템 관리자' 역할론도 너무 나간 것 같아 걱정이다. 섣부른 말과 전망은 금물이다. 말과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의 체력을 키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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