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여승무원 성경희씨 모녀 평양상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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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엄마. "

"너 내 딸 맞아. "

"엄마. "

3차 이산가족 방북단의 일원으로 참여한 이후덕(李後德.77.서울 노원구)씨가 1969년 대한항공 승무원으로 근무하던 중 납북된 딸 성경희(成敬姬.55)씨를 32년 만에 만났다.

한국 현대사의 한 응어리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李씨는 26일 오후 평양 고려호텔에서 사위 임영일(58.김일성대 교수)씨, 손녀 소영(26)씨, 손자 성혁(24.군인)씨와 함께 나온 딸 경희씨가 낮은 목소리로 "엄마" 를 계속 부르자 딸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 여한이 없어. 딸도 보고…난 이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어머니야. "

"엄마…. "

아버지 成충영(79년 작고)씨가 이미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成씨는 또다시 오열했다.

李씨는 손수 뜬 숄과 남편이 30년 전 사뒀던 시계.목걸이를 딸에게 걸어주었다.

68년 이화여대 사회생활학과를 졸업하고 대한항공에 승무원으로 입사한 成씨가 납북된 것은 69년 12월 11일.

成씨가 탑승했던 강릉발 서울행 대한항공 YS-11기가 고정간첩에 의해 북한으로 납치된 것이다. 당시 成씨는 비번이었지만 친구인 다른 승무원과 어울리기 위해 비행기를 탔었다. 승객 등 51명이 납북됐다.

成씨의 북한 내 생활은 92년 5월 귀순한 대남공작원 오길남씨가 "북에서 成씨와 함께 '구국의 소리' (대남 선전방송) 방송요원으로 활동했다" 고 증언하면서 처음으로 알려졌다.

이후 92년 8월 평양방송은 "KAL기 입북 이후 승무원들이 '의거입북 용사' 로서 어디를 가나 환대를 받았으며 복된 새 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북한에 온 다음해 결혼해 1남1녀를 두었다" 는 成씨의 육성을 내보내기도 했다.

成씨의 납북 이후 어머니 李씨는 남편과 함께 딸의 송환운동을 전개했다. 93년 3월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씨가 북송될 때엔 "李노인이 송환됐으니 우리 딸도 곧 돌아오리라 믿는다" 며 희망을 내비쳤던 李씨. 이번 방북을 앞두곤 혹여 차질이 생길까 기자들에게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李씨는 "유난히 똑똑했던 경희를 만나게 된다는 소식을 며칠 전 듣고 너무 고마워 밤새 울었다" 고 말하며 김포공항을 떠났었다.

이영종.이경희 기자, 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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