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영 칼럼] 95등도 과분하거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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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경제학은 대상을 계량화하는 이점 때문에 다른 사회과학에 대해 비교 우위를 주장해 왔다.

일례로 정치가 몇 퍼센트 발전했는지는 측정하기 어려우나, 경제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쉽게 계산한다.

***환경 없이는 경제도 없어

국내총생산(GDP)은 국경 내에서 생산된 상품과 서비스의 합계이고, 이 '국경 내' 를 국경 내외의 국민으로 바꾸면 국민총생산(GNP)이 된다.

이런 지표들이 없으면 국가 경제의 거시 분석이 사실상 불가능한데, 여기 자꾸 시비가 일어 경제학자의 밥줄을 불안하게 한다. 먼저 시장 교환의 문제가 있다.

예컨대 식당에서 먹는 밥은 국내총생산 집계에 포함되나 가정에서 먹는 밥은 제외되며, 아기를 유치원에 맡기는 비용은 포함되지만 집에서 엄마가 기를 때의 비용은 제외된다는 식이다.

그래서 영국의 후생경제학자 아서 피구는 "누가 자신의 가정부나 요리사와 결혼한다면 국민소득은 감소한다" 고 근엄하게 지적한 바 있다.

그러니 아내와 남편이(!) 밥짓고 빨래하는 가내 서비스 만점의 '홈 스위트 홈' 이야말로 국내총생산의 적인 셈이다.

다음으로 비용 계산의 문제가 따른다.

환경 오염으로 병이 잦아져 감기약 '생산' 이 늘어나면, 이는 국내총생산에 들어가지만 건강 악화라는 '비용' 은 계산에서 빠진다.

범죄 증가로 교도소 신축이 늘어나도 그것은 국내총생산 계정에 건설 투자로 잡히지만 거기 따르는 사회 불안 따위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감기약과 교도소가 국내총생산 증대에 유공자라! 이러니 경제학자들이 터질 수밖에. 동물성 사료 생산과 광우병 피해도 예외가 아니어서, 총생산 수난은 사람을 넘어 무고한 가축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석유 생산이 늘었다는 말은 원유 매장량이 줄었다는 뜻이다.

석유 소비가 늘어나면 대기 오염도 그만큼 심해지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생산과 소비의 직접 이익뿐만 아니라 거기서 발생하는 손실과 부작용까지 함께 따져야 계산이 정확해진다.

이런 부담과 필요에서 1993년 유엔은 기존 국내총생산 계정의 보조 형태로 자원 고갈과 환경 훼손을 감안한 '환경경제통합계정' 을 제안했고, 몇몇 나라에서 '환경조정적' 국내순생산(EDP) 추계를 시도했다.

우리가 흔히 '녹색GDP' 라고 부르는 지표는 '이왕의 '국내총생산에서 환경 비용을 제한 나머지를 가리킨다.

녹색GDP〓GDP-환경비용.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소련 작가 두진체프의 소설에 이어, 미국의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은 "사람은 GNP만으로 살 수 없다" 고 썼다.

비용 계산처럼 여가 계산도 필요하다는 발상인데, 일례로 극장 관람료는 국민총생산 집계에 들어가지만 관객의 만족은 거기서 빠지므로, 국민총생산이 복지의 실질적 척도가 되려면 이 여가의 가치를 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새뮤얼슨이 제안한 순경제복지(Net Economic Welfare)는 녹색GDP보다 한층 세련된 지표다.

NEW〓녹색GDP+가내서비스+여가서비스. 녹색GDP든 순경제복지든 각기 '환경 없이 경제 없다' 는 자각과 경계의 소산인 것은 틀림이 없다.

환경부는 녹색GDP 지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환경과 경제를 같이 살리는 '에코-2' 프로젝트를 추진할 방침이다.

비무장지대를 세계적 생태 공원으로 조성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에코 브리지' 를 건설하기로 했다.

나아가 북한의 환경 보호 약속을 경제 협력의 조건으로 내세울 수도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위험 불감의 '공해 공화국'

정말 근사하고 화려한 말씀들이다.

그러나 우리 주제가 지금 남의 환경을 탓할 만큼 느긋하지 못하다.

단적으로 세계경제포럼(WEF) 조사에서 한국의 환경지수가 조사 대상 1백22개국 가운데 95등 아니었던가? 이럴 때 쓰는 말이 유구무언이렷다.

환경부 장관은 낡은 자료 때문이라고 보고했고, 대통령은 국민이 오해하지 않도록 설명하라고 지시했다.

글쎄 그게 단순히 통계 자료와 오해의 문제일까? 시화 호수에서 새만금 간척지까지 우리는 여지껏 숱한 실수를 보아왔고, 유해 식품에서 불량 수입 농축산물까지 숱한 위험에 떨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이 끝이고, 앞으로 절대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동강에 댐 건설은 막았으나 그 대신 쓰레기가 댐을 이룬다.

이런 실수 불감, 위험 불감의 '공해 공화국' 에 솔직히 95등도 과분한 느낌이다.

정치 공해와 경제 공해 점수가 빠진 것이 천만다행이다.

정운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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