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때 상하이 한인들 생활상 중국 학자가 연구서 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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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일제시기 중국 상하이(上海)거주 한인들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연구서가 중국인 학자에 의해 쓰여져 주목을 끌고 있다.

신간『상해한인사회사(上海韓人社會史)』(한울아카데미.2만원)의 저자 쑨커즈(孫科志.35)교수는 한족(漢族)출신으로 한국에 유학해 98년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딴 인물이다. 귀국 후 중국의 명문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에서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다. 신간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일반 독자를 위해 쉽게 풀어낸 책이다.

孫교수를 발탁해 한국 유학을 주선한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은 전화통화에서 "광복군 시절 독립운동의 감회가 새롭다" 면서 "孫교수는 중국 송나라 이후 1천년 만에 한국에 유학온 첫 사례며, 그의 연구는 한.중 학술교류의 본격 시발점이 될 것" 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지기반이었던 상하이 한인사회의 생활상은 독립운동사 연구의 핵심테마다.

하지만 그간 중국측의 자료를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부분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주로 독립운동 사례만을 다루었던 기존의 성과를 넘어 이 책은 '독립투쟁도 우선 먹고 살아야 했다' 는 당연한 시각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한국과 일본의 자료뿐만 아니라 우리 학자들이 보기 어려웠던 중국정부의 공문서까지 활용해 1910~45년 상하이 한인사회의 실상을 가감없이 복원하고 있다.

우리 임시정부가 있던 국제도시 상하이에는 당시 독립운동가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940년 7천8백55명의 한인들이 상하이에 거주하며, 40여개의 업종에 종사하고 있었다.

대학교수에서 전차 검표원.잡상인.배우, 그리고 기녀(妓女)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의 한인들이 교민사회를 형성했다.

孫교수는 "교민들이 상하이 사회에 융화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전개된 독립운동은 바로 한인사회의 지지와 후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 지적한다.

그러나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일제의 탄압이 심해진 32년을 기점으로 상하이 한인사회는 그 성격이 크게 바뀐다.

탄압을 피해 독립운동가들이 떠난 상하이에 친일파를 비롯한 '떳떳하지 못한 교민들' 이 점점 늘어갔다. 심지어 "아편밀매.위안소 운영에 개입한 한인도 상당수에 달했다."

김준엽 전 총장은 "당시 사람들의 증언과 추측만으로 전해지던 것들을 사료적 근거를 통해 한인사회의 어두운 측면까지 분석해냈다는 데 이 책의 의미가 있다" 고 말한다.

孫교수는 이 작업을 토대로 베이징(北京).톈진(天津).산둥(山東).난징(南京).충칭(重慶)등의 한국인 삶을 계속 연구해 최종적으로『중국 관내지구 한인사(中國 關內地區 韓人史)』라는 방대한 저술을 계획하고 있다.

독립운동사를 전공한 한시준(단국대)교수는 "이 책은 중국 한인사회에 대한 포괄적 연구의 첫걸음" 이라고 평가하면서, 나아가 "孫교수와 같은 현지 전문가와 협력해 미국.일본.유럽 등 한국인 이민사에 대한 총체적 연구를 아우른다면 궁극적으로 한민족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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