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를 다지자] 30. 시류에 민감한 즉흥경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얼마 전 한 대기업의 경영제도 전반을 연구한 적이 있다.

그 회사는 겉으로 보기엔 외국에서도 보기 드문 첨단제도들을 도입해 시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영성과를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임직원의 불만만 높아졌다.

그 때문에 "뭐 또다른 최신 제도가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 필자에게 자문을 한 것이었다.

그 때 경영진과 종업원들이 기초에 너무 무심한 데 깜짝 놀랐다.

내가 인터뷰한 최고경영자는 "회사의 경쟁전략이 뭐냐" 는 질문에 '세계화' '정보화' 라는 추상적인 구호성 답변만 되풀이했다.

회사의 핵심역량과 약점이 뭔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임원을 만나기가 힘들었다. 종업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무슨 일을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등을 명확하게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좀 심하게 표현한다면 그들은 별다른 생각없이 출근해 주어진 일이나 하다가 퇴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외국기업은 다르다. 어느 종업원이든 붙잡고 그같은 질문을 하면 자신이 할 일이 뭐고,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훤히 알고 있다.

제너럴일렉트릭(GE)사는 같은 업종에서 1, 2위를 차지할 수 있는 사업에 핵심 역량을 집중하기 때문에 종업원들의 목표의식이 강하다.

다른 회사들도 부서별.개인별로 할 일이 뭔지 깨알 같이 정리해놓고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해 체계적으로 일을 처리한다. 경영의 기초가 탄탄한 셈이다.

하지만 우리 기업은 이런 기초보다 '최신기법' 에 목을 매는 것 같다.

최근 몇년간 리엔지니어링.신인사제도.팀제.연봉제.지식경영 등을 앞다퉈 도입했다.

그러나 제대로 성공한 케이스가 얼마나 될까.

우리 국민도 휴렛 패커드나 존슨 앤드 존슨 등 선진국 초우량 기업들이 엄청난 비결이나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알고 보면 경영기법과 제도가 뜻밖에 싱겁고 별다른 게 아니다.

얼마 전 만난 휴렛 패커드의 한 임원은 "경쟁력은 기발한 제도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기초가 되는 핵심 원리를 꾸준히 실천하는 충실한 경영에서 나온다" 고 말했다.

유행을 따라 민감하게 움직이는 즉흥적인 경영, 감(感)에 의존한 저돌적인 경영방식만으로는 안된다는 점을 일깨워 주는 말이 아닐까.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