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6개월 현장 점검] 上. 허위처방전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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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병.의원들의 '허위 처방전 장사' 는 의사나 환자의 약 오.남용 불감증에서 비롯된다. 늘 복용하던 약이라는 이유로 환자에 대한 진료 없이 처방전이 나간다.

취재팀의 현장조사 결과 아예 간호사가 모든 처방을 대신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이런 엉터리 처방전조차 필요없는 약국도 많았다. 이래 저래 의약분업은 아직 자리잡지 못하고 있음이 취재에서 확인된 것이다.

◇ 엉터리 신원 기재=지난 22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H의원과 서울 송파구 K의원은 의사가 환자의 이름 정도만 묻고 환자 보호자(취재기자)가 요구한 처방전을 발급해줬다. 고혈압 치료제인 A약 한달치다.

K의원에선 "길건너 P약국에 가라" 고 약국을 지정해 주기까지 했다.

H의원의 간호사는 "환자가 오지 않아도 약이름만 정확히 알고 있으면 처방전을 발급한다" 고 말해줬다.

지난 19일 경기도 성남시 Y의원. 취재진이 역시 "고혈압약인 A약의 처방전을 받으러 왔다" 고 하자 의사는 "T약이 A약 계열의 원약" 이라면서 T약의 한달분 처방전을 발급했다.

이어 간호사는 인적사항을 기재하면서 주민등록번호를 모른다고 하자 '2000000' 이라고 적었다. 한 눈에 가짜임을 알 수 있는 번호다.

하지만 이를 들고 찾아간 부근 약국에서는 개의치 않고 약을 내줬다.

40대 여약사는 "처방전 발급은 의사가 하는 일인데 약사가 확인할 필요가 있느냐" 고 했다.

당뇨병 치료제 D약의 처방전 1개월분을 진료없이 취재진의 말만 듣고 발급해준 서울 강북구의 C의원 역시 약속이라도 한듯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2000000' 으로 적었다.

고혈압 치료제 한달분 처방을 해준 다른 병원에선 '222222' 로 아무렇게나 적었다.

이들 병.의원 관계자는 한결같이 "환자가 거동이 불편해 보호자가 대신 올 경우 처방전을 발급하고 있다" 고 말했다.

"제3자에게 처방전을 내주는 것이 불법이라는 사실은 아느냐" 는 물음엔 "모른다" 고 했다.

◇ 처방전 없어도 "OK" =26일 서울 중구의 B약국은 "부모님이 고혈압약을 사오라는데 처방전이 없다" 고 하자 취재진 요구대로 A약 10알을 2천원을 받고 내주었다.

같은 날 서울 은평구의 H약국은 취재진이 요구한 A약 외에도 "이 약을 함께 먹으면 약효가 더 좋다" 면서 E제약에서 나온 한방약을 함께 팔기까지 했다.

서울 서초구의 D약국 약사는 "처방전 없이 전문약을 팔면 안되지만 예전에 사용했던 처방전을 가져오면 계속해 약을 줄 수 있다" 고 말했다. 처방전은 1회용이지만 이를 몇 번씩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손님들이 원하기 때문" 이라며 "까다롭게 하면 손님이 끊길 수도 있어 단골손님들에 대해선 그렇게 하는 게 관행" 이라고 덧붙였다.

손민호.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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