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세상보기] 20세기는 원자의 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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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파인만씨, 농담도 잘 하시네』라는 저서로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세상의 모든 지식이 파괴되고 단 한가지만을 후대에게 물려줄 수 있다면 자신은 모든 물질이 원자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원자는 그만큼 기본적이다.

이제는 특수한 주사현미경으로 개개의 원자를 보기도 하고 붙잡아서 다른 자리로 옮기기도 한다.

원자의 세기라는 관점에서 20세기는 영국의 물리학자 톰슨에 의해 전자가 발견된 1897년에 이미 시작됐다.

당구공처럼 딱딱한 입자로 생각했던 원자 내부에 원자 무게의 2천분의 1밖에 안되는 작고 가벼운 전자가 들어있는 것이다.

전자의 발견은 인류의 가장 획기적인 발명품의 하나인 컴퓨터를 위시해서 텔레비전 등 모든 가전제품 관련산업을 가능하게 했을 뿐 아니라, 원자들 사이의 결합 원리를 이해할 수 있게 함으로써 현대화학을 꽃피우게 했다.

1911년에 러더퍼드가 원자핵을 발견하면서 불의 사용, 전기의 발견에 비할 수 있는 원자력 시대(atomic age)의 서막이 오른다.

원자는 너무나 작아서 세계 인구만한 개수의 원자를 바늘 끝만한 면적에 올려놓을 수 있는 정도다.

그런데 태양계 전체 무게의 대부분이 중심의 태양에 모여 있듯이 원자 무게의 대부분이 중심의 원자핵에 집중돼 있다.

그리고 태양으로부터 명왕성까지 태양계의 대부분 공간이 아홉 개의 행성과 위성들, 소행성들을 제외하고는 텅 비어 있듯이 원자핵 바깥은 아주 작고 가벼운 전자들을 제외하고는 역시 텅 비어 있다.

이것은 전혀 예상밖의 발견이었다.

그런데 이 원자핵에 많은 에너지가 저장돼 있고 원자핵이 둘로 쪼개질 때 엄청난 에너지가 나오는 것이 알려졌다.

이 에너지를 파괴에 사용하면 핵폭탄이 되지만 평화적으로 사용하면 발전의 수단이 된다.

한편 현대 과학은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와 중성자는 쿼크라고 하는 보다 기본적인 입자들로 이뤄진 것을 알아냈다.

원자를 구성하는 기본 입자에 대한 이해는 우주와 물질의 기원에 대한 이해와 궤를 같이 한다.

모든 원자는 우주 역사의 초기에 생긴 기본 입자들이 모여 만들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우주의 기원을 밝히는 데도 원자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원자들은 제각기 특이한 파장에서 빛을 방출하거나 흡수하는 소위 선스펙트럼을 나타낸다.

별에는 여러 종류의 원자들이 있기 때문에 별빛에는 원자에 관한 정보가 가득 들어있다.

그런데 1920년대에 미국의 천문학자 허블은 수백만 광년 떨어진 별에 속한 원자들이 우주는 정적이 아니라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후일 이러한 원자의 신호로부터 우주는 약 1백50억년 전에 대폭발로 시작됐다는 빅뱅우주론이 자리를 잡게 된다.

20세기의 화학은 원자들 사이의 화학결합의 원리를 이해하고 응용하는 데 커다란 발전을 이뤘다.

20세기로 넘어오면서 농업 생산성은 이미 10억을 넘어선 당시 인구를 먹여 살리는 데 한계에 도달했다.

무엇보다도 질소성분의 공급이 달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독일의 화학자 하버는 화학반응의 원리에 입각해서 공기의 78%를 차지하고 있는 질소로부터 질소 비료의 원료인 암모니아를 합성해 인류의 식량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했다.

팽창하는 세계 인구가 제한된 식량을 갖고 전쟁을 일삼아야 한다면 민주주의니 세계 평화니 다 공염불이 되고 말지도 모른다.

60억 인구의 옷감을 천연섬유에 의존해야 한다면 제한된 경작면적을 놓고 밀을 심을지, 목화를 심을지 고민해야 할 테고 이미 철의 생산량을 넘어선 플라스틱이 없이 목재로 건물을 짓는다면 산에 나무가 남아나지 못할 것이다.

한마디로 20세기의 화학은 지구촌 인류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했다.

모두 원자를 제대로 다룰 줄 알기 때문데 가능한 일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를 놓고 볼 때 과학의 입장에서 20세기는 원자의 세기라고 말하는 데 의문의 여지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럼 이미 시작된 21세기는 무엇의 세기가 될까? 그 답에 따라 우리의 과학기술이 어느 방향에 역점을 둬야 할지가 결정될 것이다.

金熙濬(서울대 교수.분석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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