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 칼럼] 신사고와 NMD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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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올해 한반도의 기상을 결정지을 두갈래 기단(氣團)이 남과 북에서 밀려오고 있다.

연초부터 북쪽에서 부는 기류는 '신사고' 바람이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상하이(上海)의 '천지개벽' 에서 쇼크받은 후 북한의 개혁개방을 다그치고 있다.

남쪽에서 밀려오는 기압골은 힘의 외교를 내세우는 미국 부시 신정부의 국가미사일방위(NMD)체제 설치구상이다.

NMD계획이 강행되면'아마도' 미.러시아 관계는 냉각되고 대만.중국 해협의 파고는 거칠어질 것이며, '특히 그 구상의 한복판에 있는 '한반도의 기상도 험상궂어질 것이 틀림없다.

이 두 기류는 서로 상충된다. NMD계획은 미 본토 방어구상이지만 우리와 직접 연결돼 있다.

NMD는 속으로는 러시아와 중국을 겨냥하면서도 표면적으로는 북한.이라크 같은 '테러국' 들을 위협대상으로 내세운다.

그 중에서도 일본 넘어 태평양으로 대포동1호를 한방 날린 북한이 가장 가시적인 '위협의 증거' 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 정보국 첩보로도 핵폭탄을 1~2개 가지고 있을지 말지 하고 미사일 정확도는 형편없는데 대포동2호가 개발되면 애리조나의 피닉스와 위스콘신의 메디슨이 사정거리에 들어간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럼즈펠드 보고서)은 견문발검(見蚊拔劍), 즉 모기 보고 칼 빼드는 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과장됐든 어쨌든 미국은 막무가내로 이런 테러위협을 핑계로 NMD를 풀스피드로 추진하겠다(파월 국무장관)는 것이다.

'3+3계획' 으로 추진돼온 NMD계획은 1996년부터 3년간의 개발.테스트를 마무리짓고 (요격미사일 발사엔 실패했지만) 앞으로 3년간에 걸친 배치 여부를 결정해야 할 단계다.

부시 대통령은 3월 중에 결론을 내릴 예정인데 만약 곧바로 배치강행 쪽으로 결정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미국을 공격하는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해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통합방어본부에서 조기경보망.위성적외선탐지시설.X밴드 레이더.지상요격미사일을 지휘하게 되는데 이 중 수백기의 조기경보레이더 가운데 상당수는 미국 밖에 전진배치돼야 하고 따라서 동맹국들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

미국에 가장 위험스런 '우려대상국' 북한에 인접한 '미국의 동맹국' 한국은 미국 본토 수호계획에 협조하거나 또는 주한미군이 그 역할을 하는 것을 허용해야 할 것이다.

반면 북한이 신사고를 실천에 옮기자면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필수다.

金위원장이 신의주에 상하이와 같은 경제특구를 만들려 해도 중국 정부가 돈댈 처지가 아니다.

상하이를 천지개벽시킨 화교자본 역시 헛돈 쏟아부을 리가 없다.

국제금융기구의 자본을 끌어들이려면 먼저 미국의 테러국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북한을 테러국에서 해제하면 NMD 설치의 가장 큰 명분이 사라질 판이니 미국 신정부의 안보팀은 재래식무기 감축까지 덧씌우며 쉽게 들어줄 기색이 아니다.

이런 모순되는 두 가지 흐름 사이에서 남한은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NMD 설치에 협조할 것인지, 아니면 무작정 지원해주다보면 외투가 벗겨진다는 햇볕정책을 고수할 것인지, 정책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 시점에 봉착한 것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만약 지난해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심도있게 전달하고 남북간에 군사적 긴장완화문제가 제대로 논의됐더라면 정부는 일관되게 NMD 반대 명분을 축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부의 대북정책 선택이 어렵게 된 것은 이벤트와 쇼에 치중하느라 군사문제를 소홀하게 다뤄 미국의 불신을 샀던 金대통령의 더블플레이가 빚은 자업자득이다.

우리는 주변4강을 자극하고 동북아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 분명한 NMD계획에 찬성할 수 없다.

그렇다면 미국의 정책이 확정돼 우리를 압박하기 전에 정부로서는 북한의 신사고와 미국의 NMD 사이에서 접점의 틈새를 찾아 중재에 나서야 한다.

"말보다는 실체" 를 요구하는 미국 신정부에 대해 섣불리 金위원장의 비공식적인 주한미군 주둔허용 발언이나, 또는 연방제 포기 따위의 공인되지도 않은 주장으로 설득하려드는 것은 공허한 말장난이 될지 모른다.

그보다 먼저 북한이 미사일 개발의혹의 불확실성을 확실하게 제거하도록 설득하는 쪽이 더 시급하다.

金대통령이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을 서두르기보다 金위원장과 먼저 회동하는 것이 그의 햇볕정책을 구하는 순서일 것이다.

김영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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