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No' 할줄 아는 경제부총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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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개정된 정부조직법이 오늘 발효하면서 재정경제부 장관은 부총리로 승격, 기획예산처.금융감독위원회.청와대 경제수석실 등 경제 관련 부처의 의견을 조정하는 경제정책의 수장(首長)이 된다.

재경부 장관이 의장이 되는 경제정책조정회의의 기능도 강화되고 국무총리와 금감위의 대외경제정책 조정권, 금융.기업구조조정 기능도 이관받는다.

사실 3년 전 경제부총리 제도의 폐지와 더불어 경제정책의 혼선과 난맥상은 심했다.

최근의 일만 해도 현대 등 4대 그룹의 출자전환 대상과 국민.주택은행간 합병을 둘러싼 정부 개입 여부 등을 놓고 경제 부처간에 혼선이 있었다.

교통신호등처럼 분명하고 일관돼야 할 정부 정책이 이처럼 혼선을 빚음으로써 경제주체들은 혼란을 겪었고 정부는 신뢰 위기를 자초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정부 비대' 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경제부총리제의 신설 필요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부총리제의 신설이 아니라 경제정책의 결정과 운영방식의 변화가 아니겠는가.

우선 대통령의 역할 재인식이 필요하다. 재경부 장관이 부총리로 승진해야만 정책 조정기능이 원활해지는 것은 아니다. 부총리가 아니더라도 대통령이 장관을 믿고 제대로 힘을 실어주면 효율적인 정책 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시행하고 있는 팀제는 팀장의 직급과 상관없이 직책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은 기왕의 권한위임 방식에서 탈피, 스스로 상당 부분을 담당하던 경제정책의 조정기능을 경제부총리에게 일임해야 한다.

대통령은 권한을 준 만큼의 책임을 물으면 된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경제부총리가 정치권의 영향을 받지 않고 경제논리에 따라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외풍(外風)을 차단해야 한다.

경제부총리도 차제에 자신의 역할을 재인식해야 한다. 무엇보다 경제부총리는 '노(NO)' 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경제위기는 끝났다" 고 선언하는 대통령과 정치권에 대해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고 말할 줄 알아야 하고, 오는 2월 말까지 구조조정을 끝내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에 정면으로 치받을 줄 알아야 한다.

정치권이 경기부양을 강조해도 국가의 백년대계를 내다보면서 구조조정을 우선시하는 부총리가 돼야 한다.

또 정부가 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분명히 구분하고, 해야 할 일은 분명하고 일관되게 밀고 나가야 한다.

산업은행의 회사채 신속 인수등 정부의 인위적인 자금배분에 자족하지 말고 '좋은 은행' '우량기업' 을 만들기 위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더불어 부총리는 가급적 정부의 역할을 공정한 심판관에 그치게 하고 최대한 시장의 자율 조절기능을 믿어야 한다. 빅딜과 같은, 과잉설비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의 중재나 개입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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