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즈델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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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50년 전 자신이 사지(死地)에서 제주도로 탈출시킨 고아들로부터 26일 꽃다발을 받아 든 브레이즈델(사진)은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며 감격스러워했다.

- 50년 만에 한국 땅을 다시 밟았는데.

"내가 50년 전 있었던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한강 한쪽 끝에만 서울이 있었는데 이제는 한강을 감싸고 양옆으로 서울이 많이 커져 있었다.

"

- 당시 고아들이 이렇게 환영을 나왔다.

"내일 보육원에 가서나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직접 마중나와)너무 반갑다. 50년이 지났는데도 나를 기억하고 공항까지 나와줘 감격스럽다. 모습들이 많이 변해 잘 알아보지는 못하겠지만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아 이전에 함께 지냈던 아이들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다들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한 것을 보니 고마울 뿐이다. "

- 마중나온 고아들이 당신을 '아버지' 라고 불렀는데.

"그렇게 불렀나.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 몰랐다.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다. "

- 한국을 다시 찾으며 가장 기쁜 일은 무엇인가.

"황온순 원장이 살아계시다는 소식이 제일 반갑다. 나는 黃원장이 오래 전에 돌아가셨을 줄로 생각해왔다. 그런데 지난달 손자로부터 黃원장이 아직 살아 있고 여전히 고아들을 돌보며 생활하신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선 빨리 만나봐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당시 수송됐던 아이들과 보육원이 가장 보고 싶다. 다른 어떤 일보다 그들과 시간을 많이 보낼 생각이다. "

- 黃원장에 대한 기억은.

"黃원장은 고아수송작전 이후 제주도에 와서 보육원을 맡았기 때문에 서너번 정도 만났다.

黃원장은 '철의 여인' 이었다. 매우 예의바르고 짧은 기간에 제주도에 막 세워진 보육원을 맡아 동분서주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

- 미국에 돌아간 뒤에도 黃원장과 고아들 생각을 많이 했나.

"1954년 黃원장과 보육원 아이들이 사진첩을 보내줬다. 거기엔 '브레이즈델 목사님 덕택에 모두들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는 사연과 함께 아이들이 밝게 웃고 있는 사진들이 채워져 있었다. 그 앨범을 보면서 내가 한 일에 대한 뿌듯함이 밀려들었다. 이 앨범은 나의 평생 가보로 항상 간직하고 다닌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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