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신바람 노래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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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하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면 대왕을 맞이하여 기뻐 날뛸 것이다.구간 등이 그 말대로 모두 즐겁게 노래하면서 춤추었다." 『삼국유사』에 드러난 가락국에서 그들의 왕 수로(首露)를 맞는 장면이다.

노래하고 춤추며 흩어진 씨족.부족들이 왕을 모시고 한 나라를 세웠던 것이다.

상고시대부터 우리 민족이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는 기록과 흔적은 중국의 역사서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노래를 부르며 우리는 흥겹게 한 마을과 민족과 국가의 결속을 다져왔다. 일반적으로 노래는 감정이 흥분된 상태의 절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감정이 흥분된 상태인 엑스터시는 우리 말로 하면 신명(神明)내지 신바람이다. 신이 내려, 신과 함께 하나 되는 즐거움이 노래로 터져나오는 것이다.

신바람은 또 맺힌 것, 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듯이 한이 깊으면 마음과 몸이 병들어 죽음에 이르게 된다.

눈 녹고 얼음이 풀려야 봄은 오게 된다. 노래는 마음에 사무쳐 병이 된 한을 풀어 낫게 하고 또 봄을 부르는 신바람인 것이다.

이렇게 노래는 신과 통하게 해 개인의 병을 치유케 하며 서로 연대감을 강화케 하는 사회통합적 기능을 갖고 있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한에서 찾은 학자들도 많듯 그 한을 푸는 신바람으로서의 노래를 예부터 우리 민족은 유달리 즐겼다는 것이다.

노래방은 우리가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임을 세계에 다시 확인시키고 있다.

1970~80년대 악사 한명의 반주에 맞춰 술 손님들이 직접 노래 부를 수 있던 가라오케가 90년대 들어 노래방으로 바뀌었다.

가족.동료들끼리 서로 좋아하는 노래를 '간단하게 틀어놓고 맘껏 부르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유대감도 확인케 하며 우리 민족이 있는 곳이면 세계 어디에서나 생겨나고 있는 이 노래방은 음탕한 유흥문화를 양지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다.

건전한 유흥공간, 노래방에 요즘 신곡이 못오르고 있다고 한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와 노래방기기회사들 간의 분쟁 때문이다.

산길.물길 막힌 옛날에도 노래는 지역을 넘으며 항상 새롭게 변해왔다. 막혀 답답한 가슴을 뚫으려 찾은 노래방에 부르고 싶은 새 노래가 없다면 그 또한 기막힐 노릇 아닐 것인가.

날씨도, 사회도, 주머니도 꽁꽁 언 계절, 노래방에서라도 신바람.봄바람을 부르게 하라.

이경철 문화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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