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보안법 개정 논의를 서두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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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가보안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이 복잡하게 얽힐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국회에서 여야가 각각 제출했던 보안법 개정안이 자동 폐기된 뒤 이번 국회에서는 개정안을 내놓지도 못하고 있다.

보안법 개정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민주당은 당내 보수파들의 견제로 개정안 초안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고, 공동여당인 자민련은 보안법 개정만큼은 공동보조를 취할 생각이 없음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한때 일부 문제조항을 고치겠다던 한나라당도 최근 들어 보안법 개정에 반대의견을 분명히 하고 있어 보안법 개정에 있어서는 자민련과 한나라당이 의견을 같이하는 기묘한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해 국가보안법은 조속하게 고쳐져야 하며 국회차원에서의 개정 논의가 하루빨리 시작돼야 한다는 게 우리의 견해다.

일부에선 북한이 적화통일을 규정하고 있는 노동당규약을 고치지 않더라도 인권차원에서 우리가 먼저 보안법을 고쳐야 한다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발언이 시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특히 보수적인 인사들은 북한이 변화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는 데도 우리만 일방적으로 이를 고치는 것은 마치 적전(敵前)무장해제나 되는 듯 우려하기도 한다.

金대통령의 발언이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의 사전조건이 아닌가 의심하는 시각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객이 오가고 남북 경협이 진행되는 현재의 남북상황을 보안법은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남북 당국회담은 사실상 북한을 하나의 정권으로 상대하고 있으며 유엔에도 동시 가입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참칭(僭稱)(보안법 제2조)과 같은 조항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

또 불고지죄(제10조)는 이미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다.

문제는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행위' 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제7조다.

이 조항은 그 문맥의 모호함으로 인해 광범한 대상에 대해 수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돼 왔다.

현재 보안법 위반자의 95%가 바로 이 조항에 위배돼 수사받거나 기소된다. 그러나 그중 90%가 무죄로 석방되는 것이 현실이다.

보안법이 공권력 남용을 가능케 함으로써 인권유린적 악법이라고 국제적 비판을 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때문에 이런 독소조항은 고쳐져야 한다. 일부에선 이런 조항들을 고치면 보안법은 사실상 껍데기만 남고 간첩잡는 일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는 반론을 펴지만, 반국가단체의 활동이나 국가변란을 도모하는 범죄행위를 구체적으로 열거함으로써 충분히 대응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 국민 다수가 찬성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를 위한 선도적 조치들은 긍정적인 자세로 검토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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