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현의 북한문화산책] 9. 구들과 마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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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말 혹독한 추위가 연일 한반도를 강타한다.

이럴 때는 뜨끈뜨끈한 구들방이 최고가 아닐는지. 구들은 남북이 모두 사랑하는 주거양식. 구들문화는 분단의 세월을 거치면서도 남북이 모두 놓치지 않은 동질문화다.

펄펄 끓는 아랫목에서 산모가 몸을 푸는 곳. 추운 겨울날 할아버지의 입에서 아버지, 아버지의 입에서 아들에게 대를 이어가며 구전의 역사가 펼쳐지던 '쓰여지지 않은 역사' 의 구술문화 현장이기도 하다.

사람이 마지막 운명을 다할 때 자손의 손을 마지막으로 쥐던 곳…. 구들은 우리 민족의 영원한 '태자리' 라 불릴 만하다.

본격적인 구들문화의 창시자는 고구려의 민중들이다.

여러 문헌과 유적으로 미루어보아 북방에서 시작된 구들문화가 남하(南下)하고 남방에서 시작된 마루문화가 북상(北上)했음이 분명하다.

애초의 구들은 부뚜막과 방이 구분되지 않은 미분화 상태였다.

선조들은 화덕을 개량해 구들로 발전시켜 나갔다.

부뚜막은 구들 발전의 단서가 됐다.

날씨가 추운 평안도나 함경도에서는 근년까지도 부엌과 방의 경계가 아예 없었다.

부뚜막의 열기가 벽을 거치지 않고 방으로 직접 전달됐다.

'양통집' 이라 불리는 집안에는 외양간까지 있었다.

그러나 남하를 거듭한 구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함경도같이 추운 날씨가 아니었기에 방과 부엌의 경계가 필요하게 됐다.

밑에서 올라온 마루도 중부지방에서 만났기 때문에 마루방으로 향하는 불기운을 정확히 차단시킬 필요가 생겼다.

같은 구들문화인데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생겨난 것이다.

구들문화의 차이는 분단 이전부터 존재했다.

남북의 차이라고 부르는 것들 중에는 일찍이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것도 많다.

지역문화의 정체성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다.

이를 두고 남북의 이질성이라고 주장함은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다.

구들의 힘은 그 '장기지속성' 에 있다.

수천년 세월을 변하지 않고 초현대적 생활에까지 이어져서 21세기로 온전히 넘어가고 있는 풍습이 또 있을까. 땔깜용 구들, 연탄 구들, 보일러와 전기를 쓰는 개량 구들을 거쳐 '온돌침대' 마저 등장할 정도로 전통의 지속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북에서도 구들은 장기지속성을 보여주면서 아파트는 물론이고 각종 공공건물에까지 두루 진출했다.

북에서 구들이 내려오고 남에서 마루가 올라갔듯이, 남북의 생활양식이 올라가고 내려가면서 '대청마루' 와 같은 통일을 이룰 날이 올 것이다.

안방과 건넌방에는 뜨끈뜨끈한 구들방, 대청에는 시원한 마루로 깔아놓은 통합문화의 화려함은 서로 다른 양자가 만나서 만들어낸 변증법적 사고가 아닐까.

주강현 <우리민속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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