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칼럼] '주적개념' 탓하기 전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북한이 지난해 12월 이후 우리의 '주적(主敵)개념' 을 끈질기게 문제삼고 있는 데 대해 우리측이 적절한 대응논리를 충분히 펼치지 못한 점은 지금도 안타까운 대목이다.

정부는 북한이 주적개념을 비난하고 나섰을 때 '우리가 왜, 어떤 배경에서 북한을 주적으로 명시할 수밖에 없었는지' 에 대해 명백한 논리를 제시했어야 했다.

오늘날 정규군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은 공통적으로 '가상적' (假想敵)을 상정하고 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자위대' 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각국이 상정하고 있는 가상적이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가변적이고 유동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우방도, 어떤 적국도 그것이 영원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국방백서에 '북한〓주적' 이라고 명시하기 시작한 것은 1995년이 처음이다. 그당시 초미(焦眉)의 관심사는 북한의 핵개발 문제로 북.미간에는 전쟁 일보 직전의 상황까지 치달았었다.

북한을 주적으로 명시하게 된 결정적인 배경은 바로 북한의 핵문제로 야기된 일촉즉발(一觸卽發)의 한반도 안보상황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며, 그것은 시기와 상황에 따라 변화될 수 있는 다분히 유동적인 개념인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우리가 그런 북한과 화해.협력의 길을 모색하려는 것은 북한이 주적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북한도 '주적' 에서 '평화의 동반자' 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라는 점이다.

북한이 진정으로 대남 적화 전략과 군사우선주의를 포기하고 군사적 긴장 완화와 군비통제를 통해 공고한 평화체제를 이루게 될 때 북한은 비로소 우리의 진정한 '평화의 동반자' 가 될 것이고 주적개념도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될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북 군사회담은 이같은 냉정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남북간에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을 통해 서로가 주적개념이 필요없는 상황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점을 북한은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이같은 논리적 대응이 초반부터 미진했던 점은 지금도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김준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