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연금개혁, 다음 정권에 떠넘기려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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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적게 내고 많이 받는' 현행 국민연금을 수술하기 위해 국회에 개정안을 낸 마당에 열린우리당이 딴죽을 걸고 있다. 정부안은 연금보험료를 올리고 지급률을 낮추도록 돼 있지만 열린우리당이 그제 발의한 개정안은 지급률만 소득의 60%에서 50%로 단계적으로 낮추고 보험료는 현행대로 9%를 유지하도록 했다. 이렇게 연금개혁이 반쪽짜리로 전락한다면 기금 고갈 시기를 2047년에서 불과 수년간 늦출 수 있을 뿐이다. 불안한 연금재정을 안정시키겠다는 정책목표는 물 건너 가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해 연금을 받을 노인인구는 급증하는데 보험료를 낼 근로세대는 줄어드는 구조적 위기를 맞고 있다. 그래서 연금을 '더 내고 덜 받는'구조로 바꾸는 일은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가 됐다. 이게 안 되면 후세대가 연금보험료를 감당하지 못해 집단적으로 좌절하는 '연금재앙'을 겪을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법을 고치지 않는 것은 부도덕한 일" "억울하지만 현 세대가 짊어져야 한다"고 호소했겠는가.

정부가 비상한 각오로 추진하는 연금개혁에 집권여당이 물을 타는 것은 명백하게 잘못된 일이다. 열린우리당이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하더라도 현 세대로부터 인심을 잃지 않겠다는 정치적 계산이 숨어 있음을 모를 국민은 없다. 현재의 유권자를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미래세대의 고통에는 눈감겠다는 식의 얄팍한 포퓰리즘이다.

열린우리당은 정파적 이해관계의 유혹에 빠져 국가 백년대계를 그르치는 우를 범하지 말고 정부의 개정안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집권여당의 도리다. 가뜩이나 인기없는 정책인데 여당조차 주판알을 튕기면서 자꾸 딴소리를 한다면 야당인들 뜻을 같이 할 수 있겠는가. 일본과 프랑스의 집권세력이 정치적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국익을 위해 연금개혁을 추진했던 교훈을 새겨보라. 열린우리당은 연금개혁을 다음 정권에 떠넘기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