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 열전] 춘천교대 박민수 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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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어느 날 나는 낮은 곳으로 갔다. 아직 해가 뜨기 전. 새벽장이 서는 부평리 강변 마을에 갔다. 안개 속 뱃고동 울리며 강 건너 사람들 하나 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고, 뱃머리 때리는 작은 물소리 안개처럼 허공에 퍼지고 있었다. '

춘천교대 박민수(朴敏壽.56)총장이 춘천시 소양로 번개시장과 이곳을 찾는 서면 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시 '낮은 곳에서 4-부평리 강변 마을' 의 일부다.

춘천의 자연과 이곳에 사는 주민들의 소박함과 순수함을 시의 언어로 변형해 놓은 것이다. 朴총장은 춘천의 정체성을 순수한 것과 소박한 것에서 찾는다.

오랜 기간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사람들에게서 이같은 특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춘천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창조적으로 발전시키려고 노력해온 춘천 토박이다. 朴총장의 본관은 춘천. 시조(始祖)인 고려말 선비 박항(朴恒)의 22대 손이다.

춘천시 퇴계동에서 태어난 朴총장은 논둑을 걸어 춘천사범학교 부속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교사의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 때는 문학에 빠져 생활했다. 춘천교대를 졸업하고 1969년 장성국민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은 朴총장은 교육자로서의 부족함과 문학에 대한 열정을 메우기 위해 공부를 계속했다.원주대.경희대.서울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거쳐 90년 모교 교수로 부임했다.

고향의 자연, 사람들과 호흡하면서 朴총장은 춘천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에 몰두했다. 정신적 순수성 유지.고양을 위해 수향시(水鄕詩)동인에 참여했고 자연의 순수성을 지키기위해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로 활동해왔다. 96년에는 고향사람들과 자연과의 관계를 묘사한 시집 '낮은 곳에서' 를 펴내기도 했다.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성격이지만 총장이 된 뒤에는 각종 모임에서 춘천, 나아가 강원도의 정체성을 일깨우고 이를 창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강연에도 열심이다.

그는 춘천이 물로서 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수도권, 넓게는 전국민의 상수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朴총장은 내년 2월 임기를 마치면 자신의 시집 제목처럼 낮은 곳에서 춘천의 본질을 살피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역 발전을 위한 토박이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계획을 갖고있다.

춘천=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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