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빚더미 지자체 흥청망청 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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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빚더미에 올라 앉아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벌이는 흥청망청 축제는 외화내빈(外華內貧)의 우리 자화상을 닮았다.

굵직한 기업들이 퇴출 위기에 몰리는 등 나라경제가 어려운데도 일부 지자체들은 이에 아랑곳없이 축제경쟁이나 벌이고 있다.

16개 시.도의 빚이 20조원에 육박하고 연 이자만도 1조원이 넘는 이 어려운 때 그처럼 돈을 펑펑 쓰는 축제를 벌인대서야 어느 누구도 납득하기 어렵다.

축제 등 대규모 행사는 기획단계에서부터 타당성.수익성 등을 꼼꼼히 따져 결정해야 한다. 또 결정 후에도 상황에 따라 규모를 적절히 조정하는 신축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자체들이 벌인 축제나 이벤트 행사를 보면 그런 당연한 노력을 엿볼 수 없다. 서울시가 90억원을 들여 '미디어 시티 서울 2000' 행사를 열었으나 수입금은 고작 19억원에 그쳤다.

그러자 당황한 나머지 두달 일정으로 지난달 끝냈어야 할 이 행사를 보름간 연장했다 한다. 그러니 이 행사를 서울시가 '넷 시티(net city)' 로 받돋움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취지도 좋게 받아들여질 리 없다.

시민부담이나 늘리는 어리석은 짓으로 비춰지고, 시장이 무슨 딴 꿍꿍이 속으로 행사를 벌인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인천시가 18억여원의 예산으로 지난달 연 '인천 세계 춤 축제' 도 6억여원밖에 회수하지 못했다.

대도시의 위용이나 뽐내자고 돈을 펑펑 쓴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처럼 어려운 경제현실을 보면서 주민이 낸 혈세를 이렇게 무책임하게 써댈 수 있느냐는 분노가 일지 않을 수 없다.

흥청망청 지방축제는 서울시와 인천시 같은 큰 도시에만 그치지 않는다. 재정자립도가 심하겐 겨우 20%선을 웃도는 중소도시에서까지 이런 낭비축제가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고 있다.

전국 2백32개 지자체의 축제는 모두 6백여건, 지자체당 평균 3개꼴이다. 이런 축제가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진정한 축제라면 그래도 위안을 삼을 수 있다.

전주소리축제는 관객들로부터 숫제 외면당했고 그외 여러 곳의 시민.군민의 날 축제들이 주민들의 비판대상에 오르고 있다.

여기에 시민단체들의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참여연대와 함께하는 시민행동 등은 지난달 하남국제환경박람회를 연 하남시장을 상대로 '정부 보조금 지급결정 무효확인 소송' 을 내고 정부보조금 환수를 요구했다.

그런데도 지자체들은 이런 시민의 소리가 들리는지 안들리는지 막무가내 작태를 멈추지 않고 있으니 한심하다.

지자체들의 낭비성 예산집행은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 지방의회가 쓸데없는 축제나 이벤트성 행사를 가려내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지방의회의 기능과 역할 강화도 필요하다. 특히 단체장들의 대오각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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