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완영의 금강산기행 시조 12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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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타오르는 금강산을 원로시조시인 정완영씨가 다녀왔다.

백두에서 흘러내려 이곳에 와서 남북의 허리가 잘리기 전 많은 시인들이 노래했던 우리 마음 속의 보석같은 산을 꿈처럼 올라 시조 12수로 읊었다.

<다대포항을 뜨며>

살아온 세월만큼 긴 뱃길이 가고싶어

짐짓 부산에 내려와 다대포항을 뜬다

싣고 갈 회포가 팔십년 물길보다 더 멀다.

<온정리 내려서서>

천년 전 그날에는 내 고향이 여기거니

둘러선 이 산 이 물 누가 있어 그릴 건가

금강산 일만 이천봉 내 붓 끝에 나선다.

<옥류동 물빛>

얼마를 흘러가야 물도 得音 하는걸까

그것도 열두구비 구비틀고 퉁소 불고

옥류동 물빛에 겨워 단풍 타오르더라.

<구룡폭포에서>

펼쳐진 불단풍에 떨쳐 입은 흰 구름에

遊山歌 한마당이 질펀하게 쏟아진다

九天에 매달린 물줄기 만 이천봉 흔든다.

<상팔담 바라보며>

선녀와 나무꾼이 이 절경을 열었느니

신도 눈이 부셔 그만 숨고 말았던가

하늘로 이어진 사랑이 울음으로 다 고여.

<만물상을 내리며>

이 세상 기암괴석 만물의 相 다 모여도

하늘을 우러러서 못 찾을 像 하나 있어

어머님! 당신 생각을 업고 산 내립니다.

<유점사 옛터에서>

아무리 산이 높아도 절이 거기 없어봐라

그것이 산이겠는가 묏새 떠난 빈 둥지지

유점사 가을빛은 저물고 산국화가 탑니다.

<만폭동 洞天>

마하연 속속들이 물소리를 다 거두고

내금강 철철넘친 하늘빛을 받아내려

만폭동 우람한 洞天이 큰 가슴을 열었네.

<해금강 바라보며>

내금강 외금강을 두루두루 지어 놓고

무슨 꿈 다시 남아 말발굽을 놓았던가

해금강 바다에 나와 총석정을 세웠네.

<비로봉 못 오르고>

부르면 대답할 듯 비로봉이 저기인데

하늘길 못 오르고 내가 산을 내립니다

아쉰 정 남기고 가야지 산이 저기 또 남지.

<통일을 기원하며>

억만년 하늘아래 이 산 이 물 거느리고

신라, 백제, 고구려를 두루 살펴오신 산아

한핏줄 合水되는 길 너는 알고 있겠지.

<뱃머리를 돌리며>

내 나이 팔십에 둘, 기약이야 없다마는

내일이 없다한들 來生이야 없겠는가

後生에 紅顔을 데리고 임 만나러 또 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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