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 무혈혁명 러시아가 물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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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13년 철권통치를 무너뜨린 유고 시민혁명의 뒷전엔 수많은 숨겨진 얘기가 있었다. 영국 선데이 텔레그래프는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8일 상세히 보도했다.

수도 베오그라드의 의사당 건물과 TV 방송국 등이 성난 시위대의 공격을 받고 있던 5일 밤, 시내로부터 조금 떨어진 데디녜의 우치스카가(街)16번지. 울창한 숲속에 자리잡은 하얀색 빌라를 향해 검은 독일제 리무진이 속속 도착했다.

이들은 밀로셰비치에게 끝까지 충성을 다짐한 강경파 군 고위 간부들이었다. 이들은 밀로셰비치와 머리를 맞대고 상의했고, 베오그라드 남쪽 니슈에 주둔해 있는 친위 특수경찰대에 진격 명령을 하달했다.

6일 오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친서를 든 이고리 이바노프 외무장관이 밀로셰비치의 은신처에 도착했을 때 특수경찰대는 이미 수도로 향하고 있었다.

이바노프는 경악했다. 그는 밀로셰비치에게 서둘러 푸틴의 확고한 메시지를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바노프는 밀로셰비치에게 "이 정도면 충분하다. 과거야 어쨌든 우리는 더 이상 당신을 지지하거나 당신 때문에 발칸이 혼란에 빠지도록 두고 볼 수 없다" 고 말했다. 러시아는 밀로셰비치에게 최후의 버팀목이었다.

밀로셰비치는 그게 무너져 내렸음을 깨달았다. 그는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악명 높던 부인 미라 마르코비치와 상의했고 결국 특수경찰대에 복귀명령을 내렸다.

몇 시간 뒤 그 하얀 빌라에선 러시아의 중재로 밀로셰비치가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와 만났다. 그뒤 밀로셰비치는 국영 TV에 나와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러시아는 누굴 지지할지를 놓고 끝까지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은 6일 오전까지도 "코슈투니차는 안된다" 고 했다. 러시아 의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밀로셰비치를 지지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등 서방 지도자들이 줄지어 푸틴에게 전화를 걸어 설득했다. 실용주의 외교노선을 추진해온 푸틴으로선 밀로셰비치 때문에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망칠 수는 없었다.

푸틴의 이번 결정은 지난해 나토의 코소보 공습 이후 러시아가 유고의 운명에 대해 서방국가들과 협력할 수 있다는 첫 의사표시다.

또 러시아는 일단 유고의 새 정부에 대해서도 과거와 같은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코슈투니차를 인정하기까지 시간을 너무 끌었고, 그것도 마지못해서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앞으로는 같은 문화와 핏줄을 가졌다는 이유로 유고에 행사하던 영향력은 현저히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베를린〓유재식 특파원,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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