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찬 8집 앨범 "몽환적 색깔 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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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노래에 특별한 메시지나 목적 의식을 담으려고 한 적은 없어요. 그냥 평범한 사랑이랑 이별 이야기예요. 3분 몇십초, 제 노래를 듣는 동안만이라도 위안이 되길 바라는 게 목적이라면 목적일까요"

이기찬(25.사진)의 희망은 소박해 보인다. 하지만 대중가요의 가장 큰 역할은 바로 3분 몇십초간의 위안일 것이다. 그리고 이기찬은 열아홉에 데뷔한 뒤 줄곧 그 역할에 충실한 가수였다. '또 한번 사랑은 가고' '감기' 등의 이기찬식 발라드는 사랑에 가슴앓이 하는 청춘들의 마음을 충분히 다독였으니 말이다.

매년 한장꼴로 꾸준히 정규 앨범을 내다 보니 젊은 나이에 벌써 8집째다. 8집에선 이기찬도 발라드가 아닌 음악으로 승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정통 발라드가 아니라 홍대 등지의 클럽에서 흘러나옴직한 하우스풍의 노래 '그대 없이 난 아무것도 아니다'를 타이틀로 내세웠다. 편하게 몸을 흔들 수 있을 정도의 리듬에 잔잔한 슬픔이 배어있는 이기찬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낸다. 한번만 들어도 환청처럼 귓가를 맴도는 몽환적인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처음엔 5집처럼 구성하려했는데 작업을 하다 보니 의외로 이 곡이 너무 잘 맞았어요."

사실 이기찬의 노래 중 가장 큰 인기를 얻은 건 5집의 '또 한번 사랑은 가고', 그 다음이 6집의 '감기'다. 7집은 대중의 반응이 썩 좋지 않았다. 검증된 5집의 전철을 밟는 게 안전할 터라 이번 변화는 그에겐 큰 모험인 셈이다. 10년 경력의 레게 힙합 가수로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바비킴'이 랩 부분을 맡은 'My Little Girl' 등 변화를 시도한 곡들이 여럿 눈에 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발라드와 댄스 밖에 아는 게 없어서 안타깝지만 제가 발라드 가수인 건 맞아요. 그러나 이번 앨범을 통해 더 다양한 색깔을 내는 가수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에요."

이기찬은 이번 앨범에서도 타이틀곡 가사를 쓰고 네곡을 작곡하는 등 싱어송라이터의 역량을 발휘했다.

"다른 가수들보다 할 일이 많아서 불편하긴해요. 하지만 작사.작곡도 노래만큼이나 하고 싶은 일이에요"

지난 7집에서는 자신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해 실었지만 이번엔 평소 즐겨 부르던 김현철의 '왜 그래'와 이소라의 '처음 느낌 그대로'를 담았다. '왜 그래' 중 뒷부분에 나오는 "그만 만나"라는 여자 목소리의 주인공은 가수 이효리다. 원곡에서는 고소영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처음 느낌 그대로'는 김광민의 피아노 반주 하나에만 맞춰 녹음했다. 원곡보다는 맑은 느낌이다. 슬픔을 노래하든 기쁨을 이야기하든 격하게 감정을 자극하는 게 아니라 잔잔하게 마음을 흔드는 이기찬의 매력이 앨범 전체에 녹아 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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