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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너만의 나라 그들만의 나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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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김종필(金鍾泌.JP)자민련 명예총재의 골프약속에 맞춰 개회시간이 춤추는 국회. '너' 만의 나라임을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일본에 체류 중이던 JP가 일시 귀국한 것은 지난달 31일 오후 3시쯤. 단독국회를 열려던 여권의 의결정족수 미달사태를 우려한 탓이다.

*** 골프약속 맞춰 국회개회

국회 개회는 당초 오후 2시 예정이었지만 외유 중이던 자민련 의원들의 도착이 늦어져 오후 6시로 연기됐다.

그런데 JP는 서울 도착 즉시 자신의 단골 골프 파트너이기도 한 김종호(金宗鎬)총재대행 겸 국회 부의장에게 '다음날 일본에서의 골프약속' 을 이유로 개회시간을 조정할 것을 '지시' 했다.

날치기 정국에 자기집 담을 넘고 맨발로 복덕방에 숨어있다 잡혀온 '해프닝의 달인' 金대행은 즉시 민주당 원내총무에게 '협조' 를 요청했고 결국 본회의 개회는 오후 5시30분으로 앞당겨졌다.

'너' 만의 나라, '그들' 만의 나라이므로 가능한 일이었다. JP는 약사법 개정안이 처리되자 자신이 없어도 의결 정족수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뒤 본회의장을 빠져나와 오후 6시40분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전 일본총리와의 골프약속을 이유로 '너' 만의 나라를 뒤로 한 채 말이다.

JP와 자민련은 의회 내 과반수 부재라는 상황 아래서 정치적 '역할' 을 노골적으로 자임해왔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일찌감치 JP에게 발목이 잡혀 총리와 국회부의장을 자민련 몫으로 할당함은 물론 교섭단체 정족수까지 10명이나 줄이려다 혼쭐이 났다.

한 때 JP를 '역사의 쓰레기' 로 취급했던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마저 JP역할론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자 이번에는 엉겁결에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총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이른바 '3金 삼발이 정치' 의 기본틀임을 간과했던 것이다.

李총재는 주변의 '정치현실=JP역할론' 이라는 말에 현혹돼 JP와 만났다가 '밀약설' 에 휘말려 곤욕도 치렀다. 그런 점에서 李총재는 아직 멀었다.

金대행 겸 부의장은 한 모임에서 "JP의 마음을 사는 사람이 다음 대통령이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정치소신이라던 내각제는 온데간데 없다.

YS의 JP역할론도 다음 대선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3金이 함께 건재해야 한다는 판단의 부수물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해 JP는 '역할' 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정치의 썩은 고름을 빨아먹으며 '기생' 하고 있을 뿐이다.

개각이 초읽기에 들어간 요즘 모두 당직자 감투를 쓰고 있는 자민련 의원들이 너도 나도 입각에 군침들을 흘리고 있다.

입각을 위해 JP에게 골프채 선물이며 JP집 안살림 거들기를 한다는 등 볼썽사나운 이야기들이 적잖게 들려온다. 이른바 JP몫이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실질적인 인사권자가 대통령 이외에 또 있단 말인가.

공동정권이니 그럴 수 있다고□ 이인제(李仁濟)민주당 상임고문이 지난 총선 때 충청도를 돌며 'JP는 서산에 지는 해' 라고 말했던 것이 도대체 얼마나 되었다고 공동정권인가. 더구나 진정한 공동정권이라면 책임도 공유해야 한다.

*** 성숙한 정치는 언제쯤

그러나 JP와 자민련은 책임을 공유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그저 임자 없어 보이는 과실을 챙기려는 생각뿐이다. 총리는 항상 JP와 자민련 몫이고 어느 국무위원자리 역시 그렇다는 것이 상식이다.

이런 식이라면 개각도 뚜껑 열어봤자 소용없다. 결국 '너' 만의 나라, '그들' 만의 나라임을 씁쓸하게 확인시켜줄 것이 뻔하므로.

JP와 자민련의 '너' 만의 나라, '그들' 만의 나라가 용인되는 것은 우리 정치가 덧셈.뺄셈밖에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1백19석)+자민련(17석)+α' 의 덧셈.뺄셈은 이제 그만하고 곱하기 나누기도 해봐라. 고단위 정치합작을 해라. 그게 통일시대의 성숙한 정치를 구현해야 할 책임이 있는 DJ대통령의 몫이고, 상생의 정치를 표방해 온 李총재가 풀어야 할 한차원 높은 숙제다.

정진홍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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