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성차별 계율, 남성 출가자가 만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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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여자는 왜 성불(成佛·해탈해 부처가 되는 것)을 못하나” “여자 스님인 비구니는 왜 남자 스님인 비구보다 낮은 위치에 자리잡아야하나”

이같은 의문은 수천년간 남성우위의 사상과 전통을 지켜온 불교,아직도 그 전통이 여전한 우리 불교계에 던지는 대담한 비판의 목소리다.

한 젊은 여성 불교학자가 이러한 불교계의 성차별이 "석가모니의 기본사상과 맞지않다" 고 주장하면서 나아가 "성차별을 만드는 계율을 바꿔야한다" 고 목소리를 높여 눈길을 끌고 있다.

불교철학박사인 이현옥(李賢玉.37.동국대강사)씨는 최근 경기도 불암사에서 불교학연구회 주최로 열린 '현대사회의 제문제와 불교' 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불교의 여성관' 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이씨는 먼저 여성에 대한 차별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경전과 계율을 역사적으로 추적하면서 '왜곡' 임을 강조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의 가장 큰 근거가 돼온 것은 팔경법(八敬法.8가지 공경의 의무)이다. "1백세의 비구니라도 새로 수계(受戒)를 받은 비구를 보면 일어나서 맞아 정좌에 앉게 한다" . "비구니는 비구를 비방할 수 없다" 등 성차별이 명시된 대표적 계율이다.

석가모니가 여성의 출가를 허락하면서 '출가한 여성이 지켜야할 조건' 으로 남긴 말씀으로 알려진 내용이다.

그러나 이씨는 "이같은 조건은 부처님이 직접 말한 것이 아니라 후세에 남성출가자들이 만든 것" 이라고 주장했다.

석가는 여성의 출가를 간청하는 제자에게 "여성도 출가하면 궁극적 깨달음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는 말, 즉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성불(成佛)할 수 있다는 말씀을 남겼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석가의 말씀은 성차별이 엄격했던 2천5백년전 인도사회에서 매우 혁신적인 생각이며, 불교의 개혁적 성향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씨는 "석가모니 사후 초기불교에서 남성출가자들이 부처님의 생각과 달리 '여성 불성불론(不成佛論.여성은 부처가 될 수 없다)' 을 주장한 것은 남존여비가 엄격했던 당시 사회의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만들어낸 것" 이라고 설명했다.

이씨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의 남녀차별을 엄격하게 계율로 만든 것은 소승불교다. 반면 소승불교를 비판하면서 등장한 대승불교는 이같은 차별을 혁파하는 사상이었다고 한다.

대승불교는 "누구나 깨달음을 얻으면 보살이 된다" 는 입장에서 남녀와 신분의 격차를 부정했다는 것이다.

이씨가 궁극적으로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대승불교인 한국의 불교계가 왜 성차별의 계율을 강조하고 있느냐" 는 문제제기다.

소승불교의 율장인 팔경법을 가르치기보다 대승범망경(大乘梵網經)과 같은 대승불교의 경전이 보다 중시되어야한다는 입장이다.

이씨는 "한국불교의 경우 조선시대에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에 따라 핍박을 받고, 일제하에서도 식민정책에 따라 휘둘리는 과정에서 제대로 대승불교로 발전하지 못해왔다.

이제부터라도 대승불교로서 보다 발전된 모습을 갖추고 나아가 남녀평등의 미래사회에 어울리는 인식의 틀을 갖춰야한다" 고 강조했다.

조계종 관계자는 "이씨의 주장에 원칙적으로 공감하는 바가 있으며, 비구니의 위상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불교계내에서도 있다.

그러나 오랜 전통이고, 불교계의 의견이 충분히 수렴되지 못한 상황에서 쉽게 바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장기적으로 검토해볼 사안이다" 고 말했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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