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워크아웃이 제대로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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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제도를 전면 손질키로 한 모양이다. 일시적 자금난에 처한 기업의 회생을 돕기 위해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이 제도는 진작부터 '실패작' 으로 평가돼 왔다.

LG경제연구원 조사 결과 대상기업의 60%가 버는 돈보다 이자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은 엉망인데도 오너는 회사 돈 펑펑 쓰고, 경영 잘 하라고 파견한 전문경영인은 거액의 정치자금을 조성하는 등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빚어졌고, 정부.채권단은 이를 방치했으니 실패는 당연한 결과였다.

오죽했으면 세계은행 서울사무소장이 최근 철수하면서 '워크아웃은 겉치레' 라고 지적했을까.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이를 사실상 폐지키로 한 정부 결정은 때늦은 감마저 있다. 이로 인해 적잖은 은행손실이 추가로 드러날지 몰라도, 더 큰 손실을 막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판단이라고 본다.

우리는 정부가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새 제도 도입에 앞서 실패 원인에 대해 정밀분석이 필요하다고 본다. 제도적인 허점도 적지 않지만, 보다 중요한 문제는 '운용' 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허점은 기존 오너의 영향력에 대한 견제장치가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법정관리와는 달리 이 제도는 오너를 배제하지 않도록 돼 있다.

하나 정말 문제가 있는 기업엔 제재가 필요했는데도 그렇질 못했다. 전문경영인들이 "오너 때문에 부동산 등 자산 매각이나 구조조정이 어렵다" 고 하소연할 정도니 경영이 나아질 리 없다.

채권금융기관들도 철저한 관리.점검보다는 가능하면 말썽 안 일으키는 데 급급했다. 이러니 감독기관의 사후관리가 제대로 될 리 없다.

대상기업이나 전문경영인 선정과정에서도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지연.학연 연줄에 대한 특혜시비가 있었고, 일부 은행들은 퇴임 임원들의 일자리 제공용으로 워크아웃을 활용하기도 했다.

일부 오너들의 비도덕성과 뻔뻔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정부의 정책 부재와 금융기관의 무책임, 그리고 오너의 비도덕성이 어우러져 다시 수십조원의 부실을 초래할지 모를 실패를 가져온 것이다.

기본적으로 부실기업은 시장원리에 따라 퇴출돼야 한다. 재생 가능한 기업까지 죽게 내버려 두는 것은 국력의 낭비란 측면에서 회생제도는 불가피하지만 지금처럼 엉터리로 운용된다면 없느니만 못하다.

따라서 앞으로 도입될 새 제도는 드러난 허점의 보완과 함께 철저한 운용과 감독 및 사후관리가 병행돼야 한다.

부실 책임이 있는 오너.대주주 입김을 단호히 차단하고 기업이나 전문경영인의 선정과정은 보다 투명해야 한다.

경영상태를 정기적으로 체크할 장치가 있어야 하며 성공할 경우 전문경영인에게 충분히 보상하되 실패에 대한 엄격한 문책도 함께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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