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기 왕위전] 이세돌-서봉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물러설 수 없는 길로 들어선 李3단

총 보 (1~145)〓진창길인 줄 알면서도 한번 내디딘 걸음이기에 물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승부의 냉엄한 논리로 말한다면 한번 내디딘 걸음이라도 진창길인 줄 알면 바로 돌아서야 한다. 프로들은 이런 경우 "항복했다" 고 표현한다.

그런데 이 판은 미묘했다. 이세돌3단이 92의 오버페이스를 범하고 그 순간 徐9단이 93의 역습으로 나왔을 때 李3단도 즉각 잘못됐음을 느꼈다.

따라서 바로 항복하고 물러서고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이미 물러설 길이 없었다.

98자리에 지키지 않은 92.이렇게 단 한수가 어긋났을 뿐인데 93을 당한 상황이 너무 치명적이어서 물러서면 지게 돼 있었다.

그때를 재현한 것이 '참고도' 다. 흑1(실전의 91)로 뛰자 李3단은 노타임으로 2에 붙였다. 흑A로 빠지면 백B로 지키는 수순이 한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상대의 역습같은 것은 추호도 염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徐9단은 바늘 끝만한 틈을 찌르며 3으로 역습해왔고 이 수로 상변 백집이 허물어져 버렸다.

하변 흑집에 대항할 실리를 잃어버린 백은 부득이 흑대마를 잡으러 끝없이 추격해 갔으나 거꾸로 전멸하고 말았다.

돌이켜 생각하면 서봉수란 기사도 누구보다 접근전에 강한 사람이다.

李3단은 비록 무용이 절륜하다고는 하나 너무 서두르다가는 함정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염려해야 옳았다.

이로써 본선리그 전적은 두 사람 똑같이 6승1패. 부득이 재대결로 도전권을 가리게 됐다.

박치문 전문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