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중독자’라는 면죄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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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타이거 우즈의 스캔들로 미국이 온통 시끄럽다. 사건이 수습될 만하면 새로운 여인과의 혼외 정사가 터져 나와 이제는 더 이상 어떻게 손 써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재까지 우즈와 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하고 나선 여성은 14명. 앞으로 몇 명까지 늘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맨 처음 우즈 부부의 가정불화설이 흘러나올 때만 해도 그저 흔하디 흔한 유명인의 바람이려니 했다. 두 번째 여성과 스캔들이 터졌을 당시 우즈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나는 가족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진심으로 나의 일탈을 후회한다”고 사과했을 때만 해도 그럭저럭 일이 마무리되나 싶었다.

그러나 “우즈는 그의 아버지가 사망하던 날에도 섹스를 즐겼다” “우즈의 나체 사진을 갖고 있다” “우즈의 아이를 낳았다”는 여성이 속속 등장하면서 그의 이미지는 거의 재기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실추됐다. 한두 명이었어야지, 14명의 입을 무슨 수로 막는다는 말인가! 그저 돈 많은 스타가 하룻밤의 쾌락을 쫓았다고 하기엔 잃을 것이 너무 많은 모험이었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추락은 한순간이다. 우즈를 광고에 기용한 업체들은 하나둘 계약을 파기하고 있으며 그의 아내도 최근 이혼 전문 변호사를 선임했다. 사건이 워낙 기이하게 흘러가다 보니 전문가들은 그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분석하고 나섰다. 심지어 훌륭한 외모의 모델 출신 부인까지 두고도 말이다!

심리학자들이 내린 진단 가운데 가장 유력한 것은 그가 ‘섹스 중독자(sex addict)’라는 것이다. 알코올 중독처럼 섹스도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이른바 중독적 증상이라는 것. 만약 그가 실제로 섹스 중독이라면 그에게 쏟아지고 있는 비난이 조금은 완화될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그의 난봉질(?)은 일종의 병이지 선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도대체 섹스 중독이란 무엇인가. 학계에서는 섹스 중독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 정신의학회가 발행하는 정신질병 목록에 ‘섹스 중독’이라는 병명은 없다. 단 ‘달리 설명되지 않는 성 장애’ 항목에 “강박적으로 섹스 상대를 찾거나 계속해 자위를 하는 행위” 등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규범을 벗어난 섹스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단지 중독의 문제로 규정할 경우 못된 남성들의 여성 편력 혹은 성범죄를 정당화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유부남이 바람을 피우고 성범죄자가 여성과 아동을 강간해도 이 모든 게 중독 때문이라면 이는 너무 간편한 핑계다. 중독 여부를 판별하는 기준도 애매하다.

그러고 보면 언젠가부터 현대인들은 절제할 수 없는 욕망을 ‘중독’이라는 명목으로 포장하는 데 익숙해졌다. 담배나 술, 마약처럼 중독성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에 대한 집착은 물론 음식이나 섹스처럼 중독성 여부가 불투명한 대상에 대해서도 우리는 쉽게 ‘중독’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1990년대 미국에서는 담배 회사를 상대로 흡연자들의 소송이 잇따랐고 결국 흡연자들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패스트푸드 업체에 대한 비만 환자들의 소송이 계속되고 있으나 고열량 음식의 중독성 여부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성인 잡지나 에로영화 업계도 섹스 중독자들로부터 줄소송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일간지에서 문화부 기자로 근무하다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유학하고 있다. 전공은 사회학. 음악과 문화 등 대중문화 전반에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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