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공백 장기화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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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부가 23일 의료계 폐업 종합대책을 발표했으나 대한의사협회는 이를 거부하고 폐업을 계속키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진료 공백이 장기화할 전망이다.

이날 정오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이 일제히 사직하고 부산백병원 등 일부 대학병원 응급실이 이날 오후 1시쯤부터 환자를 받지 않아 환자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 정부 대책 발표〓정부는 이날 오전 이한동(李漢東)총리서리 주재로 긴급 당정협의회를 열어 7월 1일 의약분업을 예정대로 실시키로 하고, 수가 인상과 전공의 처우 개선 등 9개항을 담은 폐업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3~6개월 동안 의약분업을 시행한 뒤 ▶임의조제의 문제점을 반영해 약사법을 개정하고▶병.의원이 공개한 처방약에 한해 대체조제를 금지하기로 했다.

또 9월 말까지 의료보험수가를 현실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의과대학 정원을 동결하며 의료분쟁조정법을 제정하는 한편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를 위해 국무총리실 산하에 의.약계 등 각계 대표가 참여하는 보건의료발전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7월부터 운영하기로 했다.

차흥봉(車興奉)보건복지부장관은 "더 이상의 보완책은 없으며, 사실상 최후 통첩" 이라며 "의료계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중 조치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 이라고 밝혔다.

李총리서리는 23일 오후 8시30분 의료계의 폐업강행 방침과 관련, 특별 담화문을 발표하고 "의료계의 집단 폐업은 윤리적.법률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로 정부가 내놓은 최종안을 수용하고 의료현장으로 복귀해 환자진료에 나서줄 것" 을 호소했다.

◇ 의협 거부〓의사협회와 의권쟁취투쟁위원회는 "정부의 대책은 전혀 새로운 게 없어 일고의 가치가 없다" 며 " '선(先)보완 후(後)시행' 이라는 우리의 요구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아 폐업을 계속하기로 했다" 고 말했다.

의협은 전국의사대표자 결의대회를 열어 폐업강행 방침을 인준했다.

병원협회는 상임이사회를 열고 외래진료 재개를 결정했지만 전공의들이 파업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어서 외래진료가 정상화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 응급실 기능 마비〓서울대 의대교수 2백11명은 "정부가 의료인을 구속하고 준비 안된 의약분업을 강행하려는 분위기 속에서 신규 응급환자 진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사직했다.

나머지 61개 의과대학 교수들도 의쟁투의 입장에 동조해 교수직을 사직했다.

고려대 구로병원과 안암병원.중앙대 필동 부속병원.수원 아주대병원 등의 응급실 교수들은 2~3명의 과장급 간부의사들을 남기고 이날 오후 응급실을 빠져나갔다.

이 때문에 119가 후송한 환자만을 겨우 진료하는 사실상의 마비상태에 빠졌다. 부산대병원은 보직교수와 군의관이 응급실을 운영하고 있다. 다른 병원들도 의사들이 개인 자격으로 응급실을 지키고 있지만 22일보다 의사수가 줄어 정상진료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 약사회 당정 대책 수용〓대한약사회 신현창 사무총장은 "일방적인 의사 달래기식의 접근방법이라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며 "그러나 지금의 의료대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수용하는 수밖에 별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3~6개월의 시행기간을 거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약사법을 개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 이라며 "하지만 정부가 사전에 개정을 못박아두고 접근하는 방식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고 밝혔다.

신성식.고정애.기선민.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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