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산가족 상봉 틀 제대로 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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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남북 적십자사가 일정을 조정한 끝에 사흘 뒤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을 열기로 했다.

이번 회담은 6.15 공동선언이 명시한 대로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 하는 문제가 중심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이번에 1백명 정도의 방문단을 서로 교환해 상봉할 것" 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산 1세대만도 1백23만명에 60세 이상 고령자가 69만명이나 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번 상봉은 규모면에서 커다란 보따리의 아주 작은 매듭을 푸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런 만큼 남북은 모처럼 마련된 상봉 기회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거나 거꾸로 이산가족들의 한(恨)만 도지게 해선 결코 안된다.

남북간의 이산가족 상봉 논의는 1950년대 휴전 직후부터 있어 왔고 85년에는 최초로 각각 1백51명이 상대지역을 찾기도 했지만, 상봉을 정례화하거나 접촉방식을 다양화하는 데는 실패했다.

북측의 혁명가극 공연 여부나 우리측 군사훈련을 서로 문제삼았던 전례를 감안하면 '인도적 차원' 외에 다른 문제와 결부시키고 상대를 자극하는 행위는 피차 자제해야 옳을 것이다.

북한 거주 일본인 부인들의 고향방문이 97, 98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15, 12명 규모로 성사됐으나 상대에 대한 불신과 감정대립으로 결국 중단되고 만 사례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따라서 23일의 적십자회담은 8.15방문단의 규모.방법을 중점 협의하는 한편으로 '8.15 이후' 도 염두에 두는 자리가 돼야 한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기왕의 '남북화해.불가침 및 교류.협력 합의서' 에도 명시된 '자유의사에 의한 재결합' 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당장은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자세로 상호 신뢰를 쌓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주소와 생사를 확인하는 일이 시급하다.

북한측도 인민보안성 주소안내소를 중심으로 이에 관한 자료가 축적돼 있는 만큼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남북 공동선언의 첫 가시적 산물이 상봉 사업임을 깊이 인식하고 상봉의 정례화와 상설면회소 설치, 편지.사진 교환 등 상봉의 기본틀에 대한 합의를 도출해야만 한다.

이미 통일부 등에는 정상회담 결과에 고무돼 고향방문을 신청하는 실향민이 줄을 잇고 있다.

정부는 방북단 선정에서 고령자 위주.직계가족 우선 등 나름의 기준을 세워 최대한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

우리는 또 이산가족 상봉이 국군포로.탈북자.납북자들에게도 당연히 해당되는 문제라고 판단한다. 세심하게 상대를 배려하면서도 원칙에 입각한 교섭태도를 당부한다.

분단에 따른 대표적인 비극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주는 이산가족 상봉을 이번에도 시늉으로 끝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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