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돈 가뭄 본질, 정부는 알고 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가 과연 금융불안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심각한 돈 가뭄으로 기업들의 위기감은 급속도로 확산되지만 정부 대응은 뒷북인 것은 물론 임기응변적 대증(對症)요법으로 일관하고 있다.

어제도 원금보장형 신탁상품 허용, 종금사 유동성 지원 등을 발표했지만 신용경색에 대한 근본대책이라기보다는 '급한 불 끄고 보자' 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실효성이 불투명한 10조원 채권형 펀드에 이어 이렇듯 단기 대책만 되풀이하고 있어 자칫 상황이 더욱 악화되지 않을까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최근의 돈 가뭄은 시중에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필요한 곳으로 흐르지 못하는 데 더 큰 원인이 있다. 올 들어 은행 저축성예금은 무려 50조원이나 늘었다. 투신.종금 등에서 우량은행으로 옮아간 것이다.

하지만 은행들은 6월 말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 비율을 맞추는 등의 이유로 대출기준을 까다롭게 하는 바람에 대출 적격 업체가 크게 줄었다.

여기다 투신.종금사 등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기업어음(CP).회사채 매입이 어려워지면서 멀쩡한 기업까지 심각한 돈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6월 이후 연말까지 돌아올 회사채가 무려 30조원에 이른다니 적절한 대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 자칫 자금대란이 터지지 말란 법도 없을 정도다.

때문에 정부 대응도 단기유동성 공급 등 단편적인 방법이 아니라 장기 비전을 제시하고 왜곡된 자금흐름 구조를 바로잡을 수 있는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방법이 돼야 한다. 당장 시급한 것은 정부의 신뢰회복이다.

현 경제팀에 대한 시장의 신뢰는 이미 바닥이다. 새로 내놓는 정부 대책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투신.종금사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들이다.

총선.남북 정상회담 등에 신경쓰느라 적절한 대응시기를 놓쳐 지금의 자금난을 자초하고도 다시 똑같은 오판을 되풀이하고 있으니 이해가 안 간다.

보다 정확한 현실 인식, 그리고 난국 타개를 위한 획기적인 의식전환이 요구된다.

앞날에 대한 불투명성을 덜어주는 노력도 시급하다. 우량은행까지 대출을 기피하는 것은 과연 기업이 죽을지 살지 분석이 어렵기 때문이다. 금융기관도 마찬가지다. 이는 정부 정책이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부는 금융기관.기업에 대한 지원원칙을 분명히 한 뒤 철저히 지켜야 한다.

지금처럼 상황에 따라 원칙이 수시로 바뀌면 아무리 좋은 대책도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다. 공적자금도 문제점을 솔직히 인정, 국회 협조 등을 얻어 자금을 추가 조성해 금융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밖에 은행들도 대출기법 개발 등을 통해 옥석을 가리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종합적인 대응이 시급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